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확산으로 위기에 몰린 미국 경제에 또 다른 충격파가 가해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주(州)를 비롯한 서부지역 산불이 주택 가치 등에 피해를 주면서 자칫 금융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른바 캘리포니아 산불의 '나비효과'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산하 기후변화자문위원회는 10일(현지시간) "기후변화의 광범위한 영향이 금융시스템에 혼란을 일으켜 궁극적으로 금융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기후변화의 물리적 여파가 이미 미국에 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자연재해가 지역적인 충격에 그친다는 경제학자들의 기존 분석과 달리 상황이 변했다"고 적시했다. 이번 대규모 산불과 기후변화 간 연관성이 거론되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금융위기 발발 가능성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 미국이 연방정부 차원에서 기후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서가 전제하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산불 위험에 노출된 위험 주택의 가치 하락으로 주택담보대출의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아지며, 채무불이행이 늘어나면 은행과 주택담보대출증권 보유자 등이 피해를 봐 주택담보대출 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 또 산불 위험이 확산되면 주택 소유자들은 고가의 보험에 가입해야 하며 이 여파로 집값이 하락할 수도 있다. 주택 가치 하락은 지방정부의 세수 감소와 채무상환 능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투자자들이 기후 재앙을 우려해 위험자산 재조정에 착수할 경우 금융 안정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천둥 번개 탓에 자연 발화한 산불이 미국 경제 전반을 뒤흔들 수 있다는 얘기다.
캘리포니아주 소방국은 "올해 들어 연간 산불 피해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250만에이커(약 1만117㎢) 이상의 면적이 소실됐다"고 밝혔다. 소방관 1만4,000여명과 소방헬기 수십대가 동원됐지만 고온건조한 기후 속에 진화율은 24%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CNN방송은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대형 산불로 빛이 차단되면서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었다"며 "화성 같았다"고 전했다. 오리건주의 경우 지역 내 산불 건수가 40건에 육박하면서 주민 10분의 1 이상이 피란길에 나선 상태다. 케이트 브라운 오리건주지사는 "이처럼 통제불가능한 산불은 처음"이라고 했다.
인명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서부지역 산불로 캘리포니아주에서만 최소 15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지역 최대 도시 로스앤젤레스(LA)에서는 26년만의 최악 스모그가 발생했다. 캘리포니아 남부해안대기질관리청(SCAQMD)에 따르면 노동절 연휴 기간이던 지난 6일 LA 도심의 오존 농도는 185ppb까지 치솟았고 8시간 평균농도도 118ppb를 기록했다. 미 연방정부 기준치인 70ppb를 훨씬 넘어선 수치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캘리포니아주 산불이 더 많은 오염물질을 공기 중으로 배출하면서 스모그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캘리포니아 산불의 영향은 4,000㎞나 떨어진 캐나다 국경까지 퍼졌다. 미국 국립기상청(NWS)은 "캘리포니아ㆍ오리건ㆍ워싱턴주에서 잇따라 발생한 산불의 연기가 미 대륙을 지나고 일리노이주 시카고를 넘어 미시간ㆍ오하이오주 등 캐나다와 인접한 오대호 상공에까지 퍼졌다"고 밝혔다. 국립기상청 인디애나폴리스지부는 "서부 산불의 연기가 대기 상층부로 밀려와 하늘이 흐리고 석양은 평소보다 더 화려했다"고 전했다. NWS는 다만 "연기가 고고도에 자리잡고 있어 지표면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