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선거 캠페인에 닌텐도의 커뮤니티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모동숲)을 활용하면서 게임이 실제 선거에 도움이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 자민당 총재 후보로 나선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도 '모동숲'을 활용하려고 하다 일본 내 약관 문제로 중단했지만 그 만큼 게임이 선거 캠페인의 중요한 전략이 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인들이 선거 전략에 게임을 활용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 길거리 선거 유세가 어려운 가운데 비대면 홍보를 강화하고 게임 등 온라인 콘텐츠에 익숙한 젊은 이들의 표심을 잡겠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 밀레니얼 세대(24~39세)는 지난해 기준 7,210만명으로 베이비부머 세대(56~74세ㆍ7,160만명)를 넘어서며 최대 유권자 집단으로 떠오른 상황. 바이든 캠프 관계자는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모동숲은) 캠프가 이용자와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라며 "모동숲 이외에 다른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인기 게임을 선거 전략에 활용한 건 바이든 캠프가 처음은 아니다. 앞선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는 모바일 증강현실(AR)게임 '포켓몬 고(GO)'를 캠페인에 썼다.
당시 힐러리 캠페인 홈페이지에는 "레이크우드 메디슨 파크로 와서 포켓몬을 잡고,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 더 알아가라. 어린이도 환영"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클린턴 캠프 측은 "1980년대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힐러리 후보는 또 2016년 7월 버지니아 주 애넌데일 유세장에서 "누가 포켓몬 고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하면 그들이 투표장에서 포켓몬을 사냥할 수 있게 할지 궁리하고 있다"고 농담을 던졌다. 특히 캠프 관계자가 힐러리에게 포켓몬 고를 간단히 설명했는데, 힐러리가 이날 유세에서 원고에 없던 농담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포켓몬 고는 닌텐도, 포켓몬스터 브랜드를 관리하는 닌텐도 자회사 포켓몬컴퍼니와 미국의 증강현실(AR) 소프트웨어 개발사 나이앤틱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포켓스톱'으로 지정된 특정 건물이나 장소에 가면, 포켓볼 등 게임에 필요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고 '체육관'으로 정해진 장소에서는 포켓몬을 훈련시키고 대결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포켓몬 고는 좋은 평가만 받았던 건 아니다. 정보통신(IT) 매체 더버지는 힐러리가 이 게임을 하는지, 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을 쓰는 '블루 팀'(Team mystic) 소속인지 등 많은 의문이 남아있다고 보도했다.
또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포켓몬 고를 패러디해 클린턴을 비난하는데 활용했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힐러리 후보가 등장하고 사용자가 그에게 공을 던지면 포켓몬 고 게임처럼 몬스터 볼에 붙잡히는 내용의 영상을 만들어 올린 것이다.
선거에 게임을 활용하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엘레나 베르토지 미 퀴니피악대 게임 디자인∙개발 교수는 "(코로나19로) 모든 사람들이 집에 머물면서 게임을 하는 새로운 환경에 놓여 있으며 원래 게임에 관심 없던 사람들조차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며 "특정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인구 특성을 파악할 수 있으면 게임에 메시지를 담는 것은 효과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모동숲은 커뮤니티를 가꾸면서 서로 소통하는 게임인 만큼 바이든 메시지와 문화적으로 잘 어울린다"고 덧붙였다.
반면 아직까지는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다니엘 크레이스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NYT에 "(게임을 선거 캠페인에 활용하는) 이런 노력이 성공 했는지를 알려줄 수 있는 데이터는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데니스 플레인 미 주니아타대 교수도 "코로나19 시대에 집집마다 찾아다닐 수도 없기 때문에 (비대면의) 게임은 새로운 기술, 전략"이라면서도 "아직은 그것이 효과적일지 알 수는 없고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플레인 교수는 그러면서도 "모동숲이 많은 이들의 표심을 움직일지는 알 수 없지만 바이든을 지지하는 이용자와 친구들에게 재미를 선사할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모동숲이 가짜 뉴스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 시사매체 슬레이트는 7일(현지시간) 게임 산업이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 다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같이 가짜뉴스 등 콘텐츠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됐는지 확실치 않다는 다니엘 켈리 명예훼손 방지연맹(Anti-Defamation League∙ADL) 부소장의 기고를 실었다.
켈리 부소장은 페이스북 등 SNS를 괴롭혀왔던 문제가 온라인 다중이용자게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지난해 미국 내 한 설문조사 결과 온라인 게임을 하는 미국 성인의 13%는 9∙11음모론에, 9%는 홀로코스트 허구론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면서 세계보건기구(WHO)나 바이든 캠프가 게임을 통해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이용자나 단체도 잘못된 정보를 퍼뜨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게임 회사도 다른 SNS 회사들처럼 정치적 거짓 정보를 어떻게 대응할지, 이를 막기 위해 어떤 기능을 도입할지 등을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포켓몬 고나 모동숲과 같은 대중 게임을 선거에 활용한 사례는 없었다. 다만 2018년 6∙13 지방선거 및 재보궐 선거에서 간단한 게임을 만들거나 게임을 본 딴 정책 홍보 시도가 있었다.
당시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보드게임 형식을 차용한 정책·공약 홍보 웹사이트 '철수의 마블'을 운영했다. 이재명 경기지사 후보는 두 장의 사진 속 다른 부분을 찾거나 군중 속 이 후보를 찾는 게임 '이재명과 도리도리잼잼'을 비롯해 후보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유세 현장을 중계하는 웹사이트 '이재명GO'를 공개하기도 했다.
한편 선거 활동은 아니지만 청와대도 홍보에 게임을 활용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들을 청와대로 초청하는 대신 게임 마인크래프트 속 캐릭터로 변신해 어린이들을 위로했다.
마인크래프트 포맷을 활용해 가상으로 구현한 청와대 전경과 내부를 문 대통령과 김 여사를 닮은 캐릭터가 소개하면서 코로나19를 이겨내는 어린이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내용이다. 마인크래프트는 다양한 블록을 활용해 가상의 세계를 건설하고 탐험하는 게임으로, '게임계 레고'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