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구는 수도 서울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최대 집단감염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올 초 수도권 최대 집단 발병지였던 코리아빌딩 내 콜센터(2월ㆍ98명), 만민중앙교회(3월ㆍ41명), 이곳에서 비롯된 중국동포 교회 쉼터(6월ㆍ9명) 그리고 지난달 집단감염이 있었던 아파트(12명) 등이 모두 구로구 소재 시설들이다. '신천지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대구처럼 코로나19로 구로구는 곳곳에 감염병 불길이 번졌고, 주민들은 오랫동안 공포에 떨어야 했다.
6개월 넘게 코로나19로 격전을 치른 까닭일까. 구로구는 요즘 방역 ‘테스트 베드’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달 24일 오후 1시 구로구 한 아파트 경비실 앞으로 ‘트럭’ 한 대가 달려왔다. 바이러스 유입을 막는 음압 설비를 갖춘 검체 채취 부스를 탑재한 ‘차량 이동식’ 선별진료소였다. 기존 이동식 선별진료소처럼 야외에 텐트를 따로 치지 않아도 돼 검사 준비 시간이 크게 단축되고, 의료진이 무거운 레벨 D 방호복을 입지 않고도 검사를 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장비’다. 개방형 선별진료소인 '워킹 스루', 차 안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에 이은 'K방역'의 새로운 아이콘이다.
"가까이 오세요". 의료진이 인터폰으로 요청하자 투명 플라스틱 벽 너머 주민이 투명창 구멍으로 한 발짝 다가가 입을 벌렸다. 25일까지 이틀 동안 바퀴 달린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은 아파트 주민은 240여명. 김일구(52) 구 보건소 전 감염병예방팀장이 아이디어로 나온 선별진료소다. 그는 “지난 3월 9일 구로구 콜센터 빌딩 주변에 검체 채취를 하는 야외 텐트를 세워야 하는데 비가 와 난감했다”며 “'안전하고 빠르게 선별진료소를 만들 수 없을까'를 고민하다 차에 통째 싣는 방법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날 퇴근한 그는 도안을 그리고 선별진료소를 제작하는 회사 대표를 찾아가 제작을 주문했다. 지난달 세상에 처음 나온 차량 탑재 선별진료소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길동처럼 코로나19 감염지에 급파된다.
김 팀장의 실험은 '더 빨리, 더 넓게'란 방역 구정에서 비롯됐다. 실험의 토양은 이성 구청장이 다졌다. 구로구가 전국에서 처음 선보인 워크 스루 선별진료소도 그의 작품이다. 이 구청장은 톡톡 튀는 행정가로 소문이 자자하다. 2000년 서울시 시정개혁단을 맡고 있던 2000년 7월, "내 생각이 낡았다"며 돌연 휴직계를 내고 가족과 세계 일주 배낭여행을 떠난 건 유명한 일화다.
이 구청은 구로형 사회적 거리두기 프로그램도 직접 냈다. '입국자는 집으로, 가족은 호텔로' 따로 격리하는 안심 숙소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 구청장이 이끄는 구로구는 방역 사각지대 해소에도 앞장섰다. 외국인 거주자가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관내 다문화ㆍ외국인 주민 100여명을 불러 모아 '다문화 코로나19 모니터링단'도 꾸렸다. 우리말이 서툰 다문화, 외국인 주민들에게 감염 예방 수칙과 행동요령 등을 안내해 증상 발생 시 바로 조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구청장은 신종 감염병 전담 조직을 만들어 '포스트 코로나19'를 준비하고 있다. 이 구청장은 "내년에도 코로나19가 계속된다는 생각으로 행사 예산을 최소화하고 방역 강화 등 코로나 예산 편성을 꾸리고 있다"며 "감염병으로 일상을 잃어버린 주민들의 집단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