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과 '디테일'로...파국 막아낸 한정애의 힘

입력
2020.09.05 04:30


정부ㆍ여당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4일 파업 중단 합의문에 서명하면서 제3차 전국의사 총파업 돌입 예고일을 사흘 앞두고 최악의 상황을 막아 세웠다. 이 중심에는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이자 임명된 지 일주일도 안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한국노총 출신으로 19, 20대 국회에서는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진정성 있는 메시지’, ‘디테일한 중재안 마련’ 등 한 의원의 특유의 협상력이 이번 협상에서도 빛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그는 20대 국회에서도 산업현장에서 위험한 작업의 외주화 방지를 골자로 하는 ‘고(故) 김용균법’ 통과의 입법의 공신이었다.

원칙은 지키되 끊임없는 대화로 얻어낸 타결

정부와 의료계가 강 대 강 대치를 이어 가자 민주당은 ‘원점 재검토’ 카드를 꺼냈다. 의대 정원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 등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할테니, 의료계도 진료 거부를 멈추고 국회의 협의체에서 함께 토론하자는 제안이었다. 지난달 28일 한정애 의장이 당시 보건복지위원장 자격으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와 만나 이러한 방안을 제시하면서 벼랑끝으로 치닫던 상황에 숨통이 트였다.

'원점 재검토' 로 의사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 앉힌 한 의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책위의장 임명 첫날이었던 지난 1일, 곧바로 최대집 의협 회장과 박지현 대전협 회장을 연이어 만났다. 국회 협의체에서의 ‘열린 대화’를 조건으로 한 의료진의 조속한 현장 복귀에 공감대를 이루도록 설득했다. 범의료계 4대악 저지투쟁 특별위원회(범투위)의 협상안 논의가 예정된 3일 열린 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도 한 의장은 “협상안이 도출되면 의료계 행정처분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대한 적절한 처리 방안 마련되도록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의료계가 협상 단일안을 마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한 의장은 즉각 의료계와 밤샘 토론을 들어갔다. 한 의장 측 관계자는 이날 “당과 의료계 사이를 지속해서 중재하려고 했고, 결국 당정청이 모두 협의를 통해 수용할 수 있는 안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것을 토대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예산 지원 등 전공의들의 애로사항까지 합의안에 담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 의장은 의협이 주장해 온 ‘정책 철회’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협상의 원칙은 고수한 것이다. 대신 그는 의료계 관계자들이 안심할 수 있을 때까지 대화를 해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날 타결된 최종 합의문에 ‘철회’가 아닌 ‘원점에서 재논의’라는 말이 들어간 이유다. 민주당 한 지도부 의원은 “한정애 의장은 원칙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의료계의 의사들의 문제제기에 대해서 같이 함께 할 수 있는 교집합을 만들어내는 데 능하다”면서 “실무와 디테일에 강하다는 점이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눈물로 읍소하는 진정성, “메시지보다 중요한 메신저의 역할”

국회 입성 전 노동현장에서 쌓은 협상 ‘내공’이 한 의장의 가장 큰 장점이다. 여기에 보건복지위원장과 여당의 정책위의장이라는 타이틀이 '권한 있는' 협상파트너로서 의료계 설득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 평소 한 의장과 신뢰 관계가 두터운 김태년 민주당은 원내대표는 이번 협상과정에서도 상당한 재량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당 내부에서는 진정성 있는 그의 협상 태도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2018년 12월, 20대 국회에서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한 의장이 보여준 '무릎까지 꿇은 호소'는 지금까지 회자된다. 당시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 의장은 국회의장실을 찾았다가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마주쳤다. 한 의장은 “이 법이 그렇게 나쁜 법이 아니다. 의심스러우면 노동부 차관을 불러 이야기를 30분만 들어달라”면서 눈물로 읍소했다고 한다. 그는 “하도 울었더니 힘이 빠져서 나중에는 무릎을 꿇고 앉아 이야기를 했다”고 지난해 언론을 통해 밝혔다. 그는 당시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 앞을 찾은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에게 수시로 법안 심사 과정을 설명했다. 논의가 난항에 부딪혔을 땐 김미숙씨를 끌어안고 “죄송하다”며 오열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도 이런 모습이 드러났다.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서 처음 참석한 원내대책회의에서 그는 파업 중인 의료진을 향해 ‘환자 곁으로 돌아가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한 의장은 “길지 않은 정치인의 길을 걸어왔는데 한 분 한 분 진심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다. 28일 저녁에 전공의들과 의대생들과 3시간 이야기하면서도 진심을 다했다”면서 울먹였다. 한 의장이 지난달 28일에 이어 1일 전공의 측과 또 다시 만난 것도 “현장에서 어려운 가운데서 (강경한) 주장을 하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고, 한번 만나는 것보단 두 번 만나는 게 신뢰 쌓고 소통하는 데 도움된다”는 이유였다. 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한정애 의장은 진정성 있게, 진솔되게 협상에 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면서 “거기에서 오는 신뢰감도 협상에 큰 무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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