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4000명 고문ㆍ학살한 '킬링필드' 교도소장 사망

입력
2020.09.03 05:00
크메르루주 학살 주범 에아브

1970년대 캄보디아 급진 공산주의 정권 크메르루주가 자행한 자국민 대규모 학살 사건인, 이른바 ‘킬링필드’의 주범 카잉 구엑 에아브가 숨졌다. 킬링필드와 뒤이은 캄보디아 내전의 정확한 희생자 규모가 여전히 미궁인 상황에서 학살 책임자들의 잇단 사망으로 진상 규명과 처벌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전망이다.

AFP통신은 2일 에아브가 수년 간 투병 끝에 전날 프놈펜의 한 병원에서 77세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네스 페크트라 캄보디아 법원 대변인은 “에아브가 심각한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했으나 곧 숨을 거뒀다”고 통신에 말했다.

에아브는 크메르루주 정권 아래서 투올슬렝 교도소장을 지내는 등 학살 주역으로 활약했다. 크메르루주는 1975년 4월부터 1979년까지 집권하면서 170만명의 국민을 학살했는데, 당시 투올슬렝에서만 1만4,000명 이상이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학 교사 출신이었던 에아브는 고문ㆍ살해 전 과정에 개입한 최종 책임자였다. 생존자들은 그가 철저하고 꼼꼼하게 교도소의 모든 면을 통제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크메르루주 정권이 몰락한 뒤 에아브의 행적은 묘연해졌다. 일부에서는 에아브가 이미 사망했다는 추정을 내놓기도 했지만, 그는 가짜 이름을 사용하며 캄보디아 서부 한 구호기관에서 도피 생활을 하다 1999년에야 체포됐다. 2008년엔 크메르루주 지도부 가운데 처음으로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ECCC)에 기소됐다. 에아브는 재판 과정에서 고문ㆍ학살 혐의에 대해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듬해 그는 법정에서 “적어도 1만2,380명의 생명을 앗아간 점에 전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며칠 뒤 무죄판결과 석방을 요청해 대중의 분노를 샀다. 이후 2014년 종신형을 최종 선고 받고 복역을 시작했다.

에아브가 숨지면서 킬링필드 주범들에 대한 단죄는 더욱 요원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ECCC에는 에아브를 포함해 전범 5명이 기소됐으나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은 이는 없다. 재판 도중 피고인 2명이 숨졌고, 2015년 종신형에 처해진 누온 체아 전 공산당 부서기장도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모든 학살을 주도한 폴 포트 전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 겸 총리는 기소되기도 전인 1998년 사망했다. 현재 생존한 사람은 체아 전 부서기장과 함께 종신형을 받은 키우 삼판 전 국가주석뿐이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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