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판사가 “8ㆍ15 광화문 집회를 허용한 재판장의 실명을 딴 법안 발의는 위헌적 입법”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불허한 보수단체의 광복절 집회를 허용한 법원 결정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의 계기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여권이 해당 결정을 내린 재판장의 이름을 딴 법안을 만드는 건 결국 ‘판사 겁주기’ 시도라는 이야기다.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3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이른바 ‘박형순 금지법’이라 불리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및 행정소송법 개정안’은 위헌”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면서 이같이 밝혔다. 해당 글은 ‘법률의 미운 판사 이름 붙이기’라는 제목과 함께 게재됐다.
박형순 금지법은 감염법예방법상 교통차단 또는 집회 제한이 내려진 지역이나 재난안전법상 재난지역 내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지난 15일 광화문에서 열린 광복절 집회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집회 개최를 허가한 법원에 비난이 쏟아졌다. 급기야 여당에선 재판장 이름을 딴 법안까지 발의하는 등 법원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김 부장판사는 그러나 ‘박형순 금지법’이 헌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보장(헌법 제21조 1항)하고, 이에 대한 ‘허가’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헌법 제21조 2항에 위배된다고 했다. 그는 “1972년 ‘법률에 의한 제한’을 인정했던 헌법 제16조가 개정되며 현재의 헌법 제21조 2항이 만들어졌다”면서 이 조항이 우리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물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어 “(이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다고 하더라도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고려 없이 엄정하게 판단한다면 위헌으로 판단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김 부장판사는 특히 “무리하게 판사 이름을 넣어 위헌적인 입법을 시도하고 있다”면서 국회에 직격탄을 날렸다. 법관에 대한 일부 국회의원의 비판은 곧 ‘매번 여론이나 살피고 정치 풍향계 흘러가는 대로 판단하면 된다’는 말과 다름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더 무서운 공격은 법관으로 하여금 법리와 논거를 떠나라고 주문하고, 헌법의 이름으로 판단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라며 “법원이 융통성이 없으면 구체적 타당성을 놓칠 수 있지만, 정치로만 만사를 결정하면 국민은 항상 정권이나 정치적 세력의 판도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또, 코로나19 재확산 국면에서 정부가 ‘새로운 희생양’을 찾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도 폈다. 그는 “바이러스 확산에 원인을 제공했다고 지목된 여러 무리의 사람들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국민에게 책임을 돌리기보다 그 국민을 대표하는 권력자나 정치인, 공무원들이 책임을 통감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국민 탓을 하고, 새로운 희생양만을 찾는다는 인상을 주는 건 온당치 않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박형순 금지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입법 시도이며, 따라서 즉각 중단돼야 한다는 게 김 부장판사의 핵심 주장이다. 그는 “법률에 미운 판사 이름 하나 더 붙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되물으면서 글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