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살면서 생긴 버릇이 현지인들의 삶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다. 특히 내가 아직 미성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고, 영국, 미국, 독일 등 서양 국가들에서 오래 거주하다 보니, 서양 엄마들을 우리와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었다. 한국 엄마들이 서양 엄마들과 무엇보다도 구분되는 점은, 실속을 차리는 실용주의적인 자세다. 여기서 실속이나 실용주의라 함은 대체로 먹고사는 일에 직결되는 것을 더 중시하고, 형식보다는 내용에 더 비중을 둔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것이 드러나는 세 가지 대표적 영역은 밥상, 자녀교육, 재테크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 엄마의 눈으로 볼 때, 서양 엄마들의 상차림은 아침에는 시리얼, 점심은 샌드위치, 저녁은 피자 등 자못 단순하다. 서양 엄마들은 식사보다는 케이크, 쿠키 등 간식을 직접 만드는 것에 더 신경을 쓴다. 물론 그들도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요리법이 있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요리는 ‘매일’이 아니고 ‘가끔’ 하는 일이다. 학교 도시락용 샌드위치만 봐도 햄이나 치즈만 한 장 달랑, 혹은 잼만 발라서 납작한 모양이 온갖 재료를 겹겹이 넣은 한국 엄마의 두툼한 샌드위치와 대비된다. 밥상의 내용에서는 한국 엄마들이 뛰어나지만, 서양 엄마들의 테이블 장식이나 실내 인테리어 등은 마치 전문가의 손을 거친 양 근사하다. 모임에서도 음식의 내용보다는 만남을 통한 교제를 더 중시한다.
한국 엄마들의 밥상 중시는 먹는 것이 바로 가족들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것이라는 생각때문이다. 즉, 든든한 식사로 다져진 체력이 자녀들(그리고 남편)의 사회적 성공에 필수이고, 성공이라는 동전의 또 다른 측면은 바로 교육인 것이다. 서양에도 사커맘, 타이거맘 등으로 불리는 극성 엄마들이 사교육을 동원하면서 교육열을 올리지만, 한국의 입시교육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2015. 9. 19)'는 한국의 입시경쟁을 학생들이 대입 이전에 이미 "최고의 학원을 들어가기 위해 '새끼학원(cub)'에 다녀야 하는" 상황으로 단적인 묘사를 하고 있다.
한국 엄마들의 또 다른 실속 있는 자세는 부동산, 주식, 보험, 저축 등의 소위 재테크에 아주 박식하고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서양의 전업주부들은 남편한테 일정량의 생활비를 받아 살림을 꾸려 나가는 반면, 한국 엄마들은 대체로 남편의 월급을 통째로 관리하며 재산 불리기에 노력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성의 출산 이후 직업 활동이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지 않지만(‘경단녀’), 서양에서는 나이나 성별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고 괜찮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며, 육아 여성들을 위해 근무시간도 유연한 편이다.
한국 엄마들의 실속 챙기기가 결국 한국이 고속으로 성장한 밑거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원도 자본도 풍부하지 않은 땅에서 교육의 힘으로 나라를 발전시켰다고 볼 때, 한국 엄마들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한국 엄마들의 실속 챙기기는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리고 더 앞서가기 위한 경쟁 그 자체다. 서양 엄마들이 젊을 때 직장에서 일하고 노년에 안정적인 연금을 받아 생활하려는 반면, 한국에서 이루어졌던 급속도의 경제성장과 사회의 격변 속에서 한국 엄마들의 자녀교육의 이면에는 ‘성공신화’가, 재테크의 이면에는 ‘대박’의 꿈이 도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