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휴업 두고 전공의 vs 정부 '강대강 대치'... 의료공백 장기화 불가피

입력
2020.08.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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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부터 10일째 무기한 집단휴진을 이어가고 있는 전공의(인턴ㆍ레지던트)들과 정부의 갈등이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대전협 비대위)는 정부의 수차례 만류와 협의체 구성 약속에도 불구하고 30일 집단휴업 지속을 결의하자 정부와 여당이 일제히 비판에 나섰다. 앞서 업무복귀명령에 응하지 않은 전공의를 고발하는 강수를 뒀던 정부는 추가 조사와 조치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예정된 7일부터 무기한 집단휴진을 예고한 상태에서 의정간 강대강 대립으로 비화하면서 의료공백 장기화와 그에 따른 환자들의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전협, 재투표 통해 휴진 지속 강행

대전협 비대위는 이날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자 긴급비상대책위원회의 결과 "모든 전공의는 대전협 비대위 지침에 따라 단체행동을 지속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전협 비대위는 같은 날 진행된 집단휴진 지속 여부 투표 결과가 한 표 차이로 과반에 이르지 못해 부결된 뒤, 다시 재투표를 거쳐 이같이 결정했다. 앞선 투표에서는 193개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들이 참석, △파업지속 96명(49.7%) △파업중단 49명(25.4%) △기권 48명(24.9%)으로 의견이 갈렸다. 파업을 지속하자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과반 정족수인 97명에 이르지 못해 부결됐다. 이후 비대위는 재투표를 벌였고, 파업 유지 134표가 나와 단체행동을 지속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파업 중단과 유지를 놓고 대전협 내부갈등도 빚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한정애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정부와의 합의가 실질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국회 차원의 노력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전협이 집단휴진을 지속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 “특히 1차 투표에서 파업 지속 추진의 부결이라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재투표까지 실시한 점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앞서 28일 한 위원장은 대전협과 만나, 의대정원 확대 등과 관련한 법안 추진 중단 및 국회 내 협의기구 설치 등을 약속했다. 더불어 정부와의 합의만으로는 정책 추진 중단 등 합의 이행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보건복지부도 국립대병원협의회, 한국의과대학ㆍ의학전문대학원협회 등 범 의료계와 이행을 함께 책임지겠다는 약속도 했다.

불신의 골 깊어진 의정

수차례에 걸친 정부의 타협 제시에도 불구하고 대전협이 파업강행을 결정한 건 협상과정에서 불신의 골이 깊어진 탓이 크다. 의료계에선 “보건복지부가 제대로 협상 내용을 국민에 알리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고, 정부측에선 “의료계가 (파업 관련)재논의를 하겠다 말해놓고 전공의 파업을 강행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형국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확산으로 중증환자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하루빨리 합의점을 찾아 의료공백을 멈춰야 할 의정 양측의 ‘신뢰’는 하염없이 추락하는 상황이다.

실제 정부는 의협의 2차 총파업(26일)을 하루 앞둔 지난 25일 집단휴진을 멈추고 의대정원 확대 등을 논의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작성했으나 대전협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전협을 비롯한 의료계는 “합의문은 없었고 정부 제시안을 최종적으로 수용하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한 수도권 중급병원 병원장은 “의협 내부에서는 정부가 파업국면에서 계속 거짓말을 이어간다는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이로 인한 불신이 전공의 무기한 파업의 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뢰의 틀에 들어선 균열은 28일 정부의 전공의ㆍ전임의 10명을 고발 조치, 그리고 의협의 3차 총파업 선언으로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사실상 현 정부의 최대치적 중 하나인 ‘K방역’을 일궈낸 양대 주역인 의료계와 정부가 결정적으로 등을 돌리게 된 시점이다. 특히 전공의 고발 조치는 전공의와 전임의의 빈 자리를 메우던 전국 의대교수들도 정부에 각을 세운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의협은 정부가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전공의ㆍ전임의를 고발한 것에 대해 이날 “안 그래도 쓰러지고 있는 필수의료에 국가가 공인하는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반발했다.

“환자들만 피해”…정부도 강경 대응

더 이상 내놓을 카드가 마땅치 않은 정부는 이날 대전협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말이 유감이었지 내용은 비난에 가까웠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정당하지 않은 결정”이라며 ‘불의’, ‘부도덕’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손영래 복지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현재 전공의 등의 집단휴진은 환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불의한 행동”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명분상 전공의들이 요구하는 의사수 확대 철회는 환자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의료제도적인 문제로서, 환자들이 억울한 피해를 볼 이유가 없다”며 “코로나 위기상황으로 의료 수요가 급증하는 시기에 집단적인 진료거부를 강행하는 것은 환자들의 피해를 더 커지게 하는 결과가 야기되고 이것이 고의라면 부도덕하다”고 몰아붙였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통받는 환자들을 외면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정 총리는 “(전공의들의) 업무중단이 계속되며 환자들의 희생이 잇따르고 있다”며 “부산과 의정부에서 응급실을 찾아 헤매던 환자 두 분이 결국 유명을 달리하는 일도 있었다”고 직격했다. 지난 26일 전국 전공의 등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한 후 수련병원에 대한 1, 2차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통해 28일 전공의 10명에 대한 고발조치를 단행한 정부는 내달 1일까지 수련병원 10개소에 대해 추가 현장조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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