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2,000만원대 '갓성비' 도심형 전기차 '르노 조에'

입력
2020.08.29 09:00
판매가 3,995만~4,395만원…보조금 1,136만~1,736만원 적용 가능

유럽에서 테슬라 '모델3' 보다 더 많이 팔린 전기차가 있다. 모델3보다 크기도 더 작고, 주행거리도 훨씬 짧지만 높은 경제성을 앞세운 르노 '조에'가 바로 주인공이다. 조에는 2012년 유럽시장에 처음 출시 이후 올 상반기까지 21만6,000대가 판매된 '올타임 넘버원' 모델이다. 국내 시장에는 이번 달 처음 상륙해, 국내 소비자들 공략에 나서고 있다.

최근 서울 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에서 열린 '조에 미디어 시승회'에서 조에 '인텐스' 모델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시승코스는 DDP를 출발해 광화문을 거쳐 평창동 '팔각정'을 다녀오는 총 20㎞ 구간이었다. 꽉막힌 도심과 가파른 '북악스카이웨이'를 오르내리는 구간으로 구성된 만큼, 실제 도심주행에서의 주행성능과 연비를 알 수 있었다.

조에는 전장 4,090㎜, 전폭 1,730㎜, 전고 1,560㎜ 등 전형적인 유럽 소형 '해치백(트렁크와 객실 구분이 없는 차량)' 크기다. 국산 경차인 '모닝'보다는 크고, 준중형 해치백 'i30'보다는 작다. 지금은 단종된 기아차 '프라이드'와 비슷한 크기라고 볼 수 있다.


외관은 최근 르노 그룹 디자인 철학이 반영돼 세련된 모습이다. 프런트 범퍼에는 그릴과 안개등 주변에 크롬 인서트가 더해져 전면부 하단까지 빈틈 없이 돋보인다. LED퓨어비전 헤드램프와 LED 안개등이 날렵한 눈매를 완성했다. 전면부 중앙에 위치한 대형 '로장주' 엠블럼 속에는 충전구가 숨겨져 있었다. 측면 모습은 긴 후드와 공기역학적인 라인 덕분에 날렵해 보였다. 뒷 모습은 단순하지만 단단한 느낌으로 완성됐다.

실내 공간은 예상보다 훨씬 넓었다. 휠베이스(축간거리)가 2,590㎜로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보다 길기 때문이다. 1열과 2열 모두 넉넉한 무릎공간이 확보됐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XM3, 캡처 등 기존 르노그룹 신차들과 동일한 느낌이었다. 10.25인치 디지털 클러스터와 9.3인치 세로형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는 단순하면서 미래 지향적인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중앙 디스플레이 하단에는 공조장치가 다이얼 방식으로 장착돼 사용 편의성이 높았다.

뒷좌석은 다소 높게 만들어진 느낌이었다. 실제로 앉아보면 껑충한 느낌이 들어 장거리 여행에는 피로감이 있을 것 같았다. 이는 뒷좌석 바닥에 배터리가 두껍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작은 차체에 많은 용량의 배터리를 장착하다보니 이런 형태로 제작된 것이다. 트렁크 공간은 예상외로 크고 깊었다. 유아용 유모차는 거뜬히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조에는 '르노그룹 전기차(Z.E)' 전용 플랫폼이 적용됐다. 54.5㎾h 용량의 LG화학 배터리와 자체 개발한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을 탑재해, 1회 충전 시 최대 309㎞ 주행이 가능하다. 이는 경쟁 모델로 분류되는 푸조 'e-208(244㎞)'보다 26.6%가량 긴 거리를 주행할 수 있는 것이다. 50㎾h급 DC급속 충전기를 이용하면 30분 충전으로 150㎞를 주행할 수 있다. 경제성과 효율성 면에서 동급 최고 수준이다.

조에는 전기차인 만큼 시동을 걸면 아무런 소리 없이 화면만 켜졌다. 변속기를 밑으로 한 번 당기면 'D모드'로 변경되고, 한 번 더 당기면 'B모드'가 됐다. D모드는 일반적인 주행을 위한 모드이고, B모드는 '회생제동' 장치가 작동해 달리면서 배터리가 충전되는 일종의 '절약 모드' 같은 것이다. 이번 시승에서는 전체 구간을 B모드로 달리며 브레이크를 거의 밟지 않는 '원페달' 주행을 주로 사용했다.

B모드의 제동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즉각적으로 전기모터가 역방향으로 돌면서 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속도가 줄었다. 차량을 완전히 멈추기 위해서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지만, 달리는 동안에는 브레이크를 거의 밟을 필요가 없었다.꽉 막힌 도심에서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는 번거로움과 무릎 통증도 없어 피로감도 훨씬 덜했다.

B모드는 북악스카이웨이를 오르내릴 때 더 큰 효과를 보였다. 출발 시 312㎞ 였던 주행 가능 거리는 팔각정에 올랐을 때 302㎞까지 줄어있었다. 하지만 혜화동으로 내려왔을 때는 다시 309㎞까지 주행가능거리가 증가했다. 이는 B모드의 회생제동장치가 감속과 동시에 배터리도 충전시켜줬기 때문이다. 전기모터에 장착된 회생제동장치는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 배터리 전력을 보충한다. 이는 멈출 수록 차량의 주행가능 거리가 길어지는 '마법'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DDP에 다시 도착했을 때 주행 가능 거리는 304㎞였다. 8㎞를 주행할 전력으로 20㎞를 다녀온 것이다.

조에는 효율성만 뛰어난 차량이 아니었다. 100㎾급 최신 R245 전기모터를 장착해 최고출력 136마력, 최대토크 25㎏.m(245Nm)의 힘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50㎞까지 3.6초, 100㎞까지 9.5초 만에 도달한다. 이는 단순히 수치상의 제원에 그치지 않았다. 앞차를 추월하거나 북악스카이웨이를 오를 때 가속페달을 깊숙히 밟으면 순간 몸이 뒤로 쏠릴 정도의 가속력이 느껴졌다. 다만 속도가 높아질 수록 가속감이 부족해지는 것은 아쉬웠다.

조에의 국내 출시 가격 △젠 3,995만원 △인텐스 에코 4,245만원 △인텐스 4,395만원 등으로 책정됐다. 보조금은 환경부 736만원, 지방자치단체 400만~1,0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어, 실제 구매 가격이 2,000만~3,000만원대에 불과하다. 이런 경제성을 앞세워 국내에서도 테슬라 모델3를 잡아보겠다는 것이 르노삼성차의 '큰 꿈'이다. 꿈이 이뤄질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무모하기만 한 도전은 아닐 것 같다.

류종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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