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휴진 속 병원 응급실 못찾아 결국 사망… 누구 책임일까?

입력
2020.08.2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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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 독극물 마신 40대 남성
응급실 찾다 3시간 지체 끝 사망

부산에서 독극물을 마신 40대 남성이 응급처치 병원을 빨리 찾지 못해 심야에 3시간을 지체하다 울산으로까지 옮겼으나 결국 숨져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119가 혈액투석 등 약물중독 치료가 가능한, 사고 발생지 주변 10여개 대형 병원에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가 "전문의가 없다"고 거절한 뒤 발생한 일이어서 대한의사협회 집단휴진 여파 관련성도 거론된다.

28일 부산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후 11시 23분쯤 부산 북구에서 A씨가 약물을 마셔 위독하다는 신고가 119에 들어왔다. 이에 앞서 음주단속에 적발된 A씨는 경찰관과 함께 치안센터로 임의 동행하던 중 “볼 일이 있다”며 잠시 자신의 집에 들렀다가 갑자기 독극물(농약)을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119구급대 상황실은 A씨의 위 세척 등을 해줄 병원을 급히 찾았지만 대부분 "해당 전문의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119 관계자는 "사고 발생지와 가까운 경남 양산까지 10여개 대형 병원과 접촉했지만 '전문의가 없다', '급한 환자가 많다. 다른 곳을 찾아라'는 등으로 콜사인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119 측은 이렇게 1시간 20여분간 부산과 경남지역 대학병원 6곳, 2차 의료기관 7곳에 20여차례 이송 가능 여부를 물었지만 허사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A씨는 심정지 상태에 빠졌고, 이어 도착한 북구의 한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아 겨우 심장 박동을 회복했다.

27일 새벽 1시쯤 병원의 콜사인이 떨어졌다. 상황을 공유하던 소방방재청을 통해 A씨가 울산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응급차로 1시간쯤 달려 울산대병원으로 이송된 A씨는 당시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치료가 시작됐지만 같은 날 오후 결국 숨졌다.

부산의 전문의 A씨는 "통상 독극물 중독은 종류에 따라 마시면 99% 숨지는 치명적인 게 있고, 음용 양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지만, 신속한 위 세척과 혈액투석으로 50% 이상 살릴 수 있다고 본다"면서 "실수로 적게 마신 경우 골든타임을 하루 정도로 보지만, 병째 마셨다면 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날 대학병원 등 대형 의료기관 10여곳이 약속이나 한 듯 "우리는 안 된다"며 119에 손사래를 친 이유다.

부산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독극물 중독은 심야에도 종종 일어나는 사고지만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았다"면서 "집단휴진과 코로나19 사태로 대형병원들이 주간 시간대의 부하가 커지면서 야간 응급진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문의 B씨는 "부산은 그나마 낫지만, 지방에서 야간 응급의료가 무너진 지 오래다. 응급의료 전문 선생을 구하기 어렵고, 야간에 근무할 레지던트도 충분치 않은 상황"이라면서 "위중 환자에 대한 심야 치료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부산 북부경찰서는 A씨의 정확한 사망 경위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부산= 목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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