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시설 추정 장소 사찰을 허용키로 했다. 미국의 대(對)이란 무기 금수 제재 연장 요구가 동맹의 지지조차 얻지 못한 채 불발된 직후다. 2018년 미국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이란 핵합의(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 준수 의사를 밝힘으로써 미국의 이란 고립 시도에 반전을 꾀한 것이다.
이란과 IAEA는 26일(현지시간) 공동 성명을 통해 "이란은 IAEA가 지정한 두 장소에 대한 접근을 자발적으로 제공한다"면서 "일정과 검증 활동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는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24일 이란 테헤란을 방문해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이란 원자력기구 대표 등과 집중적으로 협의한 끝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그간 IAEA와 이란은 핵시설 사찰 문제를 놓고 수개월째 갈등을 빚어 왔다. IAEA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이란이 미신고 시설 2곳의 접근을 막았다"며 집행이사회의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이란은 "IAEA의 접근권을 충분히 인정해 왔다"며 추가 사찰 불가를 주장했다. 이란은 당시 "IAEA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력에 휘말려 이란의 핵 활동을 근거 없이 의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이란과 IAEA의 합의는 이란이 2015년 미국과 독일 등 6개국과 체결한 핵합의를 지키고 있다는 선언적 의미가 강하다. 핵합의는 이란이 IAEA 사찰을 허용하고 핵 프로그램을 억제하는 대가로 국제사회가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란을 불신해온 미국은 2018년 일방적으로 탈퇴했고, 이란은 이에 반발해 IAEA의 추가 사찰을 거부하는 등 핵합의가 파기 수순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이란에 대한 제재 복원, 즉 '스냅백' 가동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공식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러자 켈리 크래프트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추가 제재를 위한 미국의 노력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따라서 이번에 이란이 핵합의 준수 의사를 밝힌 것은 미국의 스냅백 요청을 국제사회가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띄운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이란이 핵합의를 위반했는지를 결정하는 공동위원회가 내달 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ㆍ안보정책 고위대표가 주재하며 중국ㆍ프랑스ㆍ독일ㆍ러시아ㆍ영국ㆍ이란 대표가 참석한다. 이 회의에서 이란의 핵합의 이행 여부가 검증되면 이란에 대한 재래식 무기 금수 제재는 예정대로 10월 18일 만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