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총괄하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갑자기 바이러스 검사 대상을 축소했다. 확진 환자와 밀접 접촉한 경우에도 증상이 없으면 검사를 의무적으로 받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11월 대선을 앞두고 감염병 확산의 심각성을 축소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외압’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생명을 다루는 보건정책마저 정치적 도구로 악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CDC는 24일(현지시간) 코로나19 검사 지침을 “확진자와 6피트(1.8m) 거리에서 15분 이상 노출된 밀접 접촉자라도 증상이 없다면 반드시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수정했다. 당초 CDC는 증상 유무와 상관 없이 “모든 밀접 접촉자에게는 검사를 권고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무증상자를 권고 범위에서 제외하면서 검사 대상이 대폭 줄게 됐다.
문제는 지침 변경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국자는 26일 “(지침 변경은) 위에서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CNN방송에 증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미국이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감염이 가장 많은 이유는 검사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펴왔다. 검사 대상 규모를 줄여 감염 확산 실태를 눈속임하기 위해 지침을 바꿨다는 의심이 가능한 대목이다.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물론 보건의료 전문가들도 CDC의 개정안을 성토하고 나섰다. 민주당 소속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이날 트위터에 글을 올려 “CDC가 지침을 번복했다. 이건 과학이 아니라 정치”라고 비판했다. 앞서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식품의약국(FDA)에 정치적 압력을 넣어 혈장 치료제를 긴급승인했다는 의혹과 결이 같다는 얘기다. 쿠오모 주지사는 이어 “트럼프 행정부의 유일한 코로나19 대응 전략은 (사실의) 부정”이라고 압력의 배후로 대통령을 지목했다. 리아나 원 조지워싱턴대 밀컨보건대학원 방문교수도 방송에 “지침 변경과 관련한 과학적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지금은 검사 규모를 축소하기는커녕 더 많은 검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건당국은 지침 변경에 부적절한 개입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브렛 지로어 보건복지부 차관은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ㆍ감염병연구소장과 데버라 벅스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조정관, 스티븐 한 FDA 국장 등이 변경에 관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역시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파우치 소장은 지침을 바꿀지 말지, 최종 논의가 이뤄진 20일 성대 수술을 이유로 회의에 불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우치 소장은 CNN에 “(당시) 나는 전신마취를 받고 있었다”며 “새로운 지침 논의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