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과 와인의 뜻밖의 관계

입력
2020.08.27 17:23
25면


앞서 김과 관련하여 염산, 단백질과 비료와 질산을 이야기했는데 내친김에 황산과 인산도 식품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말해 보고자 한다. 언뜻 황산은 우리가 먹는 식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고, 화학 산업에서나 조금 쓰이는 물질 같다. 하지만 황산은 그저 그런 물질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1년에 무려 2억톤이나 생산되는 매우 중요한 물질이다. 우리 주변에 너무나 흔한 플라스틱의 생산량이 1년에 5억톤 정도니 황산의 생산량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황산 생산량으로 그 나라 화학 산업의 규모를 짐작하기도 하고, 황산을 화학 공업의 꽃이라고 한다. 그런 황산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도 화학 산업인데, 여러 화학 공정에 황산이 없으면 곤란하고 심지어 우리가 먹는 약이나 비타민 같은 것을 합성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진한 황산은 강한 탈수력을 가졌는데 심지어은분자 내의 산소와 수소를 빼낼 정도이다. 그런 특성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유기물을 합성하기도 하고, 특성을 바꾸기도 하는데, 식품 포장지로 많이 사용되는 유산지도 황산의 그런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유산지는 겉에 마치 기름을 바른 듯이 매끈하고 수분의 흡수를 막는 성질이 있어서 식품 포장지로 널리 사용되는데 기름을 바른 것이 아니라 종이의 주성분인 셀룰로스를 분자 레벨에서 탈수시켜 탄수화물을 지방과 같은 특성을 가지도록 한 것이다.

모든 산성 물질 중에 황산을 압도적으로 많이 생산하는 것은 다른 미네랄과 달리 매우 순도 높은 황(S)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가장 저렴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고순도의 황을 광산에서 채취하여 산소를 첨가하면 이산화황이 되고 다시 산소를 첨가한 뒤 물과 반응시키면 황산이 된다.

황산하면 좀 무섭고 피하고 싶지만 황산은 생명체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물질이다. 바로 우리 몸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중에 메티오닌, 시스테인은 반드시 황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분자이기 때문이다. 식물은 황산을 흡수한 뒤 여러 단계를 거쳐 세린이라는 아미노산에 황을 결합시켜 시스테인이라는 아미노산을 만든다. 그리고 이 시스테인은 단백질을 구성하는데 필수적이고 여러 효소나 호르몬 활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구나 시스테인의 황을 함유한 부위가 산화 환원력과 반응성이 높아 다른 아미노산과 다른 특성을 가진다. 우리 몸에 가장 중요한 항산화제의 하나인 글루타티온도 시스테인의 황-황 결합력을 이용한 것이고, 여성들의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는 것도 머리카락의 단백질에 10% 이상 포함된 시스테인의 황-황 결합 덕분이다. 살벌해 보이는 황산에서 유래한 물질이 젊음과 미용에도 기여를 하는 것이다. 심지어 맛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황으로 만들어진 가장 간단한 냄새물질인 황화수소는 유황온천이나 물이 심하게 오염된 곳에서 맡을 수 있는 지독한 냄새이고 썩은 달걀, 스컹크의 냄새도 황을 포함한 물질에서 나는 냄새이다. 하지만 모든 황화합물이 나쁜 냄새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독특한 매력을 부여하는 종류가 더 많다. 채소와 고기의 독특한 냄새 물질 중에는 황을 포함한 분자가 많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커피를 볶거나, 고기를 굽거나 빵을 구울 때 나는 고소한 냄새에 이 황화합물의 역할이 크다. 그래서 일부 식품 제조 시 풍미를 높이기 위해 일부러 시스테인을 따로 첨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이아르 반응이 강해지면서 풍미도 강해진다.

식물이나 미생물이 황산을 이용해 시스테인을 만드는 중간 과정에서 아황산이 만들어지는데 이 아황산은 벌써 17세기부터 와인을 만들 때 사용하기도 했다. 아황산은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진 아세트알데히드와 결합하여 안정된 황 화합물이 되어 와인의 맛을 개선하고 신선도를 유지시키며 생동감을 준다. 아황산이 와인의 품질을 유지하는데 가장 유용한 자원의 하나가 된 것이다. 우리 몸에는 140g 정도의 황이 들어 있는데, 단백질 섭취를 통해 매일 일정량이 들어오고, 소변을 통해 1.5~2.5g씩 황산염의 형태로 배출된다. 황산은 언뜻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이처럼 우리 몸과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다.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ㆍ식품공학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