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여자 작품은 녹음할 수 없다.”
1955년 1월 6일 데뷔작이자 은퇴작인 ‘미망인‘(1955) 후반 작업을 위해 서울 중앙청 공보처 녹음실을 찾은 박남옥(1923~2017) 감독이 들었던 소리다. '한국 여성 1호 감독'은 그런 모욕적인 순간들을 견뎌내야 했다.
지난 세기 성차별은 영화 분야라고 다르지 않았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괄시받는 게 일상이었다. 영화 의상 일을 하던 이해윤이 편집감독 이경자와 함께 1980년대 제작 현장 여성들을 모아 ‘영희회(映姬會ㆍ영화하는 여성 모임이라는 뜻)’를 결성했을 때 회원은 고작 10명 남짓이었다. 영화계는 전통적인 도제 시스템까지 작동했던 곳이라 여자가 좁은 문을 통과하기는 더 힘들었다.
90년대 중반 할리우드 영화사가 직접 배급을 시작하고,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면서 충무로 풍경은 급변했다. 새 질서가 세워지는 격변기에 여자 영화인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1987년 서울극장에 입사한 ‘미스 심’(심재명 대표)은 1995년 명필름을 설립하고 ‘접속’(1997)과 ‘해피엔드’(1999), ‘공동경비구역: JSA’(2000) 등 화제작을 잇달아 선보인다. 양전흥업 ‘미스 채’(채윤희 대표)는 올댓시네마를 창립하고 국내 영화홍보마케팅을 선도한다. 두 사람뿐 아니라 영화 각 분야에서 여자들이 약진한다.
책은 90년대 이후 활동 중인 여성 영화인들의 인터뷰를 묶었다. △제작(심재명,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 제정주 아토 대표), △저널리즘(안정숙 전 씨네21 편집장), △연출(임순례ㆍ김일란ㆍ윤가은ㆍ전고운 감독), △편집(박곡지ㆍ신민경 감독), △마케팅(채윤희, 박혜경 앤드크레딧 대표), △연기(배우 전도연, 문소리, 천우희), △미술(류성희 감독), △사운드(최은아 감독), △조명(남진아 감독), △영화제 프로그래머(김영덕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촬영(엄혜정 감독) 등 각 분야에서 눈부신 성취를 이뤄낸 이들의 삶이 담겼다.
여성 영화인들의 답변엔 푸념과 서러웠던 시절에 대한 회고는 적다. 1,000만 영화 ‘베테랑’(2015)을 만들고 지난해 ‘엑시트’와 ‘사바하’, ‘시동‘을 잇달아 흥행시켰거나(강혜정 대표),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배우상을 수상하는(전도연) 등 한국 영화사를 만들어온 이들의 성장사와 성공담이 풍성하다. 여성 영화인들의 사연을 통해 90년대 이후 한국 영화계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대학 동기들 연봉이 2,000만~3,000만원일 때 1년에 600만원을 받으며 영화 마케팅 일을 했던 사연(강혜정 대표) 등이 흥미롭다.
물론 남성 중심 영화판에서 여성 영화인들은 여러 불이익을 당했다. “(경영진이) 똑 같은 말을 내가 했을 때는 안 듣더니 새로 온 남자 기획실장이 하면” 듣거나(채윤희 대표), 주요 의사결정이 남자들끼리 모인 목욕탕과 당구장에서 이뤄져 업무에서 배제되는 경우(남진아 감독) 등을 겪어야 했다. “유학파 여자에 대한 질시” 같은 것(임순례 감독)도 감수해야 했다.
책은 여성영화인모임 기획으로 만들어졌다. 2000년 심재명ㆍ채윤희 대표 주도로 결성된 여성영화인모임의 회원은 300명 가량이다. 30년 정도 만에 여성 영화인이 30배 늘어난 셈이다. 그 사이 한국 영화는 부흥했고, 세계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