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갈뿐

입력
2020.08.28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14년 12월 경제부에 몸담고 있던 시절 사흘에 걸쳐 '월세의 공습'이란 제목의 기획기사를 냈다. 임대시장에서 전세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그 자리를 월세가 메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늘어나는 문제점 또한 다각도로 짚었다.

그로부터 5년여 만에 경제부에 복귀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도 전세의 종말을 두고 논쟁이 뜨겁다. 5년 내내 임대시장은 같은 자리를 멤돈 것일까. 아니면 시대를 너무 앞서갔나.

정확히 말하면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당시 기사 중 하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부동산은 투자의 대명사였다. 자고 나면 수천만원씩 집값이 뛰던 시절의 얘기다. 하지만 집값이 오르기는커녕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인 시대가 됐다. 이제 부동산 투자는 다른 의미로 통한다. 매매가 아닌 임대를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이다."

전세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는 분석의 바탕엔 집값이 크게 오르던 때는 지났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던 셈이다. 변명을 하자면 그땐 정말 그랬다. 부동산114 통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값은 2012년 -5.79%, 2013년엔 -1.81% 하락했다. 전국에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고 도산하는 건설사가 속출했다.

상황이 달라진 건 2016년을 전후해서다. 서울 아파트가격은 2015년 5.58%, 2016년 7.57%, 2017년부턴 10% 넘게 치솟기 시작한다. 그러자 사라져가던 전세가 돌연 부활했다. 정부의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월세는 2012년 처음으로 전세를 역전하고 2016년엔 비중이 60.5%까지 올라 전세(39.5%)를 크게 앞지른다. 그러나 2016년부터 작년까지 월세 비중은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사실 이유는 간명하다. 집주인이 전세를 내놓는 가장 큰 이유는 수억원의 보증금을 다른 부동산에 투자해 자본이득(시세차익)을 꾀할 수 있어서다. 반대로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전세보다 매달 수익을 안겨주는 월세를 선호하게 된다.

2016년부터 월세전환이 잦아들기 시작한 것도 같은 이치다. 다시 '자고나면 수천만원씩 오르는' 세상이 되니 전세보증금을 레버리지(지렛대) 삼아 집을 사는 '갭투자'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수백조원 규모의 전세대출을 장려하며 갭투자 열풍에 기름을 부었다.

물론 주지하다시피 전세는 순기능이 많은 제도다. 주거비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만으로도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전세보증금의 상당수가 대출에 기대고 있어 당장 전세가 없어지기 힘든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집값상승이라는 달콤한 열매가 존재의 바탕이 된다는 점만으로도 전세는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제도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저금리 시대가 고착화되고 시세차익까지 누리기 어렵게 된다면 무슨 수로 집주인들에게 전세를 강제할 것인가. 특히나 정부가 연일 '공언'하는대로 집값이 하향안정돼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가 고꾸라진다며 상황은 언제든 2014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

5년 전 기획기사의 부제 중 하나는 '준비없이 맞은 변화'였다. 예고없이 닥친 월세의 공습에 세입자만 고통을 받는다는 지적이었다. 지금의 현실에 대입해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전월세 현황에 대한 제대로 된 실태파악이나 통계는 여전히 미비하고, 전월세 전환율은 현실과 따로 논다. 이제라도 전세의 '출구전략'을 면밀히 짜야 한다. 집값을 잡을 자신이 있는 정부라면 말이다.

유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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