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전당대회가 연일 ‘가족 잔치’로 치러지고 있다. 전대 둘째 날인 25일(현지시간)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자녀 2명이 총출동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사면ㆍ귀화 이벤트를 열고 '현직 프리미엄'을 선거운동에 적극 활용했다. 다만 민주당과 라이벌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비난에 열을 올렸던 전날과 달리 여성과 소수자들을 위한 연대 메시지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분열’ 이미지를 씻어내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날 전대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연사로 나선 멜라니아 여사의 찬조연설. 좀처럼 공개석상에서 발언하지 않아 ‘은둔의 퍼스트레이디’라는 별칭까지 붙은 그는 최근 새 단장한 백악관 로즈가든을 배경 삼아 오랜만에 대중 앞에 섰다. 멜라니아는 “지난 5년 동안 알게 된 것처럼 남편은 전통 정치인과 다르다. 말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을 요구하고 성과를 낸다”고 포문을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맨 앞자리에서 25분간 이어진 부인의 연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의 연설은 남편의 부족함을 메우려는 듯 주로 ‘통합’과 ‘위로’에 방점이 찍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해선 “여러분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도널드는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정책을 비난하는 유권자들에게는 이민자 출신인 자신의 경험을 언급하며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고 강조했다. 여성 지지층 확대를 겨냥, 미국의 모든 어머니를 전사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재선 승리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교외 지역 여성 유권자의 표가 절실한 상황이다.
미 언론이 멜라니아의 연설을 특히 주목한 건 2016년 전대 당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의 연설을 표절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이날 그는 연설 중간중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과정과 해외 순방 중 보고 느낀 개인적 일화를 포함시키며 표절 논란을 불식하려 애썼다.
트럼프 대통령의 차남 에릭, 차녀 티파니도 워싱턴 앤드루 멜론 오디토리엄에 마련된 연단에 등장해 부친을 적극 홍보했다. 에릭은 “아버지는 극좌파의 공허하고 급진적인 견해로부터 나라를 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티파니는 평소 트럼프가 ‘가짜뉴스’로 불렀던 주류 언론을 비난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이 오보 시스템은 미국인이 신념을 형성할 권리를 허락하기보다 언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의 노예가 되도록 한다”며 아버지가 그랬듯 분열의 책임을 언론 탓으로 돌렸다. 미 CNN방송은 전날 장남 트럼프 주니어의 찬조연설을 상기시킨 뒤 “공화당 전대가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가족 사업’이 됐다”고 평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위법 논란에 아랑곳 않고 지지 연설을 강행했다. 그는 이날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호텔 옥상에서 녹화 영상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성과를 소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연설에 나섰다고 강조하며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 비전을 행동에 옮겨 내 가족이 더 안전해졌고, 자유를 보장받게 됐다”고 찬사를 쏟아냈다.
최근 높아지는 중국과의 갈등 역시 치적으로 포장됐다.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 공산당의 착취적인 공격을 가린 장막을 걷었다”며 “대통령은 중국 바이러스의 은폐, 죽음의 확산과 경제 파괴에 책임을 물었고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 이어 각종 행사를 주재하며 대통령 권한을 맘껏 썼다. 그는 이날 은행 강도 혐의로 체포된 뒤 출소 후 재소자 교화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존 폰더를 사면했다. 그러면서 “나는 재소자 출신을 포함한 모든 미국인에게 새로운 삶을 건설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최상의 기회를 줄 것”이라고 관용의 정신을 부각시켰다. 이어진 신규 시민권자들의 귀화 행사에서는 “여러분은 이제 지구상 가장 위대한 나라의 동료 시민”이라고 축하를 건넸다. 두 행사 모두 사전에 녹화된 뒤 전대 도중 방영됐다. CNN은 “정치적 이득을 위해 대통령직을 이용한 가장 직접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