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서명식 준비했지만 …의협 "합의문 만든 적 없다"

입력
2020.08.26 20:00
3면
정부 “합의 분위기 이어지다 결국 파기”
새벽에 결렬되며 정부 측 협상테이블 떠나
대전협 “4대 의료정책 철회 없인 합의 없다”


의사들의 2차 총파업 하루 전인 25일 새벽까지 정부와 의료계가 합의점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지만, 반전은 없었다. 보건복지부는 어렵게 마련한 합의안에 의-정 양측이 서명할 것으로 기대하고 한밤 중 서울 모처에서 서명식을 준비했지만, 끝내 의사들의 현장 복귀를 알리는 합의가 무산되면서 헛일이 됐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국민들에 잘 전달되도록 현장의 카메라 각도까지 미리 잡아놨던 복지부 직원들은 아쉬운 마음으로 이날 새벽 자리를 떠났다는 전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막기 위한 정부의 강경대응에도 의료계가 총파업을 강행하자, 정부는 24일부터 이틀간 이어진 정부와 의협간 실무협의 과정을 뒤늦게 공개했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26일 오전 11시 브리핑에서 “24일 국무총리와 의협과의 간담회 이후 진행된 보건복지부 장관과 의협 실무협의에서는 합의문안을 도출한 바 있다”고 밝혔다.

25일 새벽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합의문안에는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협의하며 △협의기간에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의협이 문제제기하는 4대 의료정책의 발전적 방향을 협의체에서 함께 논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합의문 작성 후 의협은 21일부터 순차적 집단 휴진을 이어가고 있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와 협의할 시간을 달라고 정부 측에 요청했다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복지부는 이에 의료계와 파업을 멈추는 합의가 8부능선을 넘었다고 여기고, 서명식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의협이 얼마 후 들고온 전공의들의 의견은 절망적이었다. 정부의 4대 의료정책을 완전 철회하고 원점에서 논의하자는 대전협의 요구가 합의문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윤 반장은 “대전협은 합의문안을 거부한 채 집단휴진을 강행하기로 결정했고, 결국 의협도 어렵게 타결한 합의문에 대한 동의를 철회하고 집단휴진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엄중한 신종 코로나 확산 상황을 고려하여 수차례에 걸쳐 양보와 대화를 위한 노력을 했으나 의료계는 정부정책을 철회하거나 원점으로 재검토하자는 주장만 반복하다 결국에는 이미 상호동의한 합의안조차 번복했다”고 비판했다.

합의안이 만들어졌다는 정부의 주장과 달리, 이날 의료계는 “(정부안에) 합의한 적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부가 제안을 했지만, 대전협이 늦은 시간 급히 대의원회의를 진행한 결과 '거부'에 표가 쏠리면서 합의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의협 관계자는 “(합의안은) 복지부가 제시한 안일뿐이고, 대전협은 4대 의료정책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협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의-정은 파업철회 결실은 고사하고 합의안의 실체를 놓고도 동의하지 못한 셈이었다.

박지연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