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독살 시도 의혹이 진실공방 양상으로 비화하고 있다. 아직 의식이 없는 나발니의 치료를 맡은 독일 의료진이 독극물 중독 가능성을 발표하고 러시아 측이 즉각 반박하면서 외교적 분쟁 조짐이 꿈틀거리고 있다. 서방 국가들이 투명한 조사를 촉구할수록 러시아도 강한 어조로 맞받아쳐 긴장 고조는 불가피해 보인다.
24일(현지시간)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 등에 따르면 나발니가 처음 입원했던 러시아 시베리아 옴스크병원의 알렉산드로 사바예프 독극물과장은 이날 나발니의 여러 약물 검사 결과가 모두 음성이었다고 밝혔다. 현재 나발니를 치료하는 독일 베를린 샤리테병원이 “콜린에스테라아제 억제제 중독 징후를 발견했다”고 공개하자 즉각 부인한 것이다. 러시아 의료진은 독일 측이 주장한 독극물 중독 증상이 다른 의약품 복용이나 다른 질병에 기인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이날 인테르팍스통신에 "독일 측이 무슨 이유로 '중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그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 독성 물질은 우리 의료진도 검토한 첫 번째 가설 중 하나였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독일 의료진은 아직까지 독살 시도에 사용된 구체적 물질을 밝히지 못해 추가 분석을 진행 중이다.
콜린에스테라아제 억제제는 근육의 수축ㆍ이완을 조절하는데, 경련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 물질이 호흡과 관련한 근육에 영향을 주면 의식을 잃는 위험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인 니발니는 앞서 20일 시베리아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던 항공기 안에서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졌다. 나발니 대변인은 톰스크공항에서 마신 차에 독극물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옴스크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나발니는 가족 등의 요구로 22일 독일로 이송됐다.
이번 사건은 이미 서방진영과 러시아의 외교 갈등으로 번졌다. 독일 정부는 나발니가 보호 대상이라는 판단 아래 그가 입원 중인 샤리테병원을 경호하고 있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철저하고 투명한 조사를 긴급히 요청한다”면서 러시아 정부를 압박했다. 영국 정부도 독일을 거들고 있다.
러시아 반(反)정부 인사들을 겨냥한 독살 시도가 과거 여러 차례 있었던 점도 사태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대표 사례가 2018년 3월 영국에서 일어난 러시아 출신 이중간첩 세르게이 스크리팔 부녀 독극물 암살 미수 사건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를 계기로 러시아 정부와 정보기관 관계자 등을 제재했고, 러시아 측은 거세게 반발했다. 때문에 나발니 미스터리도 서방 대 러시아의 새로운 대결 구도를 생성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유럽은 “벨라루스 반정부ㆍ반독재 시위 성공 여부와 맞물려 나발니 사건은 푸틴을 위협할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민중 시위를 통해 벨라루스의 정권 교체가 성사되면 러시아에서도 시위 동력을 얻게 되고 나발니 사건이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