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페리온'은 신전을 원치 않았다

입력
2020.08.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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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키 큰 나무 '하이페리온'(8.25)


2006년 8월 25일 미국 자연학자 크리스 앳킨스(Chris Atkins)와 마이클 테일러(Michael Taylor)가 캘리포니아 레드우드국립공원 자연림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이로 자란 메타세쿼이아 무리를 발견했다. 레이저 삼각법으로 키를 쟀더니 가장 큰 나무의 수고(樹高)는 115m가 넘었다. 훔볼트 주립대 생태학팀이 조사팀을 꾸려 현장 실측에 나섰다. 석궁으로 굵은 가지에 밧줄을 걸고 기중기로 차근차근 오르며 키를 재는 작업. 가장 낮은 가지가 25층 높이였다. 그 과정을 내셔널지오그래픽 영상팀이 다큐멘터리로 찍었다. 실측 결과 뉴욕 리버티섬의 '자유의 여신'보다 약 2.5배 키 큰 115.55m(379.1피트)였다. 당시까지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였던 훔볼트레드우드주립공원의 '스트라토스피어 자이언트(Stratosphere Giant, 369피트)'보다 10피트 이상 큰 나무가 발견된 거였다.

새로 발견된 나무의 나이는 5,000년 가까운 수명의 생애에선 왕성한 생장기인 약 600살. 인간으로 치면 20대 초반에 해당된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그 나무에 '하이페리온(Hyperion)'이란 신의 이름을 헌정하고, 사는 곳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하이페리온은 인간에게 신전을 요구하지 않았다.

메타세쿼이아는 수종 자체가 신화적이다. 약 2억년 전인 중생대 초식공룡들과 함께 지구에 등장, 신생대 나무인 은행나무보다 약 4배 넘게 거의 원형 그대로 지구에서 살아낸 화석 식물이어서다. 멸종된 줄 알았던 메타세쿼이아는 1943년 중국 양쯔강 상류의 한 계곡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됐고, 식물학계가 복제 번식에 성공하면서 다시 번성했다.

15년을 더 자랐을 현재 하이페리온의 정확한 키는 알려진 바 없다. '최고(最高)'라는 타이틀도 사실 인간이 아는 한 그렇다는 의미다. 하이페리온의 부모인 우라노스(하늘의 남신)와 가이아(대지의 여신)도 어딘가에서, 더 아득한 높이에서, 인류를 내려다보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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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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