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중동에서 '치적쌓기' 나서지만... 화약고에 불 붙일라

입력
2020.08.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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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ㆍ쿠슈너 잇따라 중동지역 순방
대선 의식한 '중동 평화협상' 가속화 전략
이란ㆍ중국 공적 만들기여서 갈등 불가피


11월 대선을 목전에 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지역을 '외교 치적쌓기'의 대상으로 설정한 듯하다.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간 관계 정상화 중재에 이어 이른바 '중동 평화구상'에 속도를 내려는 듯 최측근들을 잇따라 현지에 보낼 예정이다. 하지만 이란과 중국을 공적으로 규정하는 전략이어서 자칫 '화약고'에 불을 당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오는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시작으로 UAE와 바레인ㆍ오만ㆍ카타르ㆍ수단 등을 방문한다고 현지 매체 하레츠가 22일 보도했다. 하레츠는 폼페이오 장관의 이번 중동 순방에 대해 "이란에 대한 제재를 재개하는 '스냅백' 추진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걸프만 국가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분석했다.

AP통신은 폼페이오 장관의 카타르 방문에 주목했다. 카타르 수도 도하에선 지난 2월 말 미국의 중재 아래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탈레반 지도부가 만나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아프간 정부군과 탈레반 반군 간 포로 교환이 난항을 겪으면서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통신은 "폼페이오 장관이 탈레반 지도부와 만나 평화 협정 이행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내달 초에 중동 순방에 나서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가 이스라엘ㆍ바레인ㆍ사우디아라비아ㆍ모로코 등을 찾는 길엔 에이비 버코위츠 중동특사,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브라이언 훅 국무부 이란 특별대표 등 미국 내 중동문제 해결사들이 총출동한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TI)은 "쿠슈너 일행은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베니 간츠 국방장관을, 아부다비에서 사실상 UAE의 통치자인 셰이크 무함마드 빈자예드 알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를 각각 만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쿠슈너의 순방이 이스라엘과 UAE 간 관계 정상화 협상 진전과 함께 더 많은 아랍 국가들이 UAE의 길을 걷도록 압박ㆍ회유하는 데 있음을 짐작케 한다.

트럼프 대통령 최측근들의 연이은 중동 방문은 실질적인 재선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북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을 만한 외교 성과로는 '중동 평화'가 사실상 유일하기 때문이다. 쿠슈너의 중동 순방 후 백악관에서 다른 중동지역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스라엘과 UAE 간 평화 협정식을 열 것이란 얘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이스라엘과 UAE 간 관계 정상화 합의에 지역 맹주인 사우디의 동참을 공개 압박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평화구사은 사실상 역내 구도를 '이란 대 반(反)이란'으로 고착화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어 논란과 갈등이 불가피하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정치세력이 엄존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 적대시 전략까지 보태질 경우 상황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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