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은 '꿈'과 '희망'을 던졌다

입력
2020.08.23 15:15
23면
류현진도 호투, 23일은 슈퍼 코리안 데이

“잊지 못할 밤이다.”

메이저리그 두 번째 선발 등판에서 데뷔 첫 승을 거둔 김광현(32ㆍ세인트루이스)이 감격에 젖었다.

김광현은 23일(한국시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신시내티와 홈 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3피안타 3탈삼진 무4사구 무실점의 완벽한 투구를 했다. 총 투구 수는 83개였고, 시즌 평균자책점은 3.86에서 1.69로 대폭 낮췄다.

팀이 3-0으로 이기면서 김광현은 메이저리그 3번째 등판, 선발로는 2번째 등판에서 빅리그 첫 승을 올렸다. 그는 경기 후 현지 언론과 화상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일”이라며 “오래 걸렸지만 꿈을 이뤘다”고 기뻐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김광현은 먼 길을 돌아왔고, 수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다. 초등학교 시절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보며 메이저리거 꿈을 키운 김광현은 2014년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빅리그 진출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김광현에게 최고 응찰액을 제시한 팀은 샌디에이고로 200만달러에 불과했다. 돈보다 꿈을 좇아 샌디에이고와 협상 테이블을 차렸으나 계약에 합의하지 못했다.

2016시즌 후 원 소속팀 SK와 4년 총액 85억원에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한 뒤 이듬해 팔꿈치 수술을 받아 김광현의 꿈은 멀어지는 듯 했다. 2017년을 재활하느라 통째로 날린 김광현은 하지만 2018년 마운드로 돌아와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건재를 알렸다. 그리고 2019년 17승을 거둔 뒤 메이저리그 도전 의사를 밝혔다.

SK와 계약 기간이 남아 있었지만 적지 않은 나이로 더 이상 도전을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에 강수를 뒀다. 이 과정에서 SK와 줄다리기가 있었으나 SK는 결국 대승적인 차원에서 김광현의 도전을 허락해줬다. 그 결과, 김광현은 세인트루이스와 2년 800만달러에 도장을 찍었다.

꿈의 무대로 향했지만 김광현이 헤쳐나가야 할 길은 험난했다. 선발이 보장된 계약이 아니라 스프링캠프에서 경쟁을 뚫어야 했다. 일찍 몸 상태를 끌어올린 덕분에 김광현은 4차례 시범경기에서 8이닝 무실점 행진을 펼쳤다. 게다가 김광현의 경쟁자들이 부상으로 이탈하며 선발 진입 청신호가 켜졌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면서 모든 일정이 전면 취소됐다. 훈련 시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선수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오갈 데 없는 김광현은 한국행도 고려했지만 미국에 남아 외로움과 싸웠다.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메이저리그 개막을 맞은 뒤에도 혼란을 겪었다. 줄곧 선발로만 뛰었던 김광현은 마무리로 시즌을 맞아 7월25일 피츠버그와 개막 첫 경기에서 세이브를 챙겼다. 이후에는 팀 내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하며 20일간 강제 휴식을 취했고, 경기를 치르지 못하는 사이 보직이 선발로 바뀌었다.

마침내 첫 선발 기회를 잡은 김광현은 18일 시카고 컵스전에서 3.1이닝 1실점으로 데뷔전을 마쳤다. 1회부터 경기용이 아닌 훈련용 모자를 쓰는 등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제한된 투구 수 60개 이하로 제 몫을 다했다. 그리고 두 번째 선발 등판에서 메이저리그 최고 포수 중 한 명인 야디에르 몰리나와 배터리 호흡을 이뤄 신시내티 타선을 꽁꽁 묶었다.

세인트루이스 선수단은 어려운 상황에도 첫 승을 따낸 김광현에게 찬사를 보냈다. 3회말 결승 2타점 적시타를 친 한국계 토미 에드먼은 “메이저리그 첫해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역할이 중간에 바뀌었는데도 잘 던지고 있다”며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마이크 실트 감독 역시 “성공한 사람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면서 “어디서든 경쟁할 수 있는 사자의 심장을 가진 선수”라고 평가했다.

김광현은 승리 소식이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한국 팬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랐다. 그는 “한국이 IMF로 힘들었을 때 박찬호 선배나 박세리 선수가 국민들에게 힘을 줬던 걸 기억한다”며 “나도 잘해서 한국에 있는 국민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김광현과 같은 날 등판한 토론토 류현진(33)은 탬파베이와 원정 경기에서 5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역투했지만 승패 없이 강판했다. 삼진을 6개를 잡았고, 두 경기 연속 볼넷을 허용하지 않았다. 평균자책점은 3.46에서 3.19로 낮췄다. 탬파베이 한국인 타자 최지만과의 투타 대결은 최지만이 선발 라인업에서 빠져 이뤄지지 않았다. 최지만은 1-1로 맞선 연장 10회말 대타로 나가 고의4구를 얻어 출루했고, 경기는 탬파베이가 2-1로 이겼다.

김지섭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