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2차 대유행(팬데믹)의 전조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지방에는 '수도권 경계령'에 불이 켜졌다. 이태원클럽 집단 감염 당시에도 '서울포비아' 현상은 있었지만, 당시와는 차원이 다르다. 신천지발 무더기 확진자 발생으로 봉쇄령 얘기가 돌았던 대구도, 여름철 관광객으로 먹고 사는 제주도, 장마와 태풍 피해로 복구작업이 한창인 전남도 '수도권 방문 자제'는 물론 서울 등 수도권 손님들에게 손사래를 치고 있다.
16일 서울 사는 30대 남성이 경북대병원서 확진판정을 받으면서 44일 만에 '무확진 행진' 기록이 깨진 대구시는 이날 수도권 지역 행사와 모임, 집회 참가를 자제해달라고 시민들에게 촉구했다. 종교행사와 집회 참가자에 대해서는 증상이 보이는 즉시 코로나19 검사를 주문했다.
대구시는 2학기 개학을 앞두고 수도권 출신의 학생들이 지역 내 기숙사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도록 하는 초강수도 뒀다.
휴가철 성수기를 맞은 제주도 지역 경제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수도권 관광객이 반갑지만은 않다. 제주도는 이날 경기 김포시보건소로부터 최근 제주를 다녀간 A씨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통보받고 역학조사를 실시하는 등 긴장감이 역력하다.
제주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관광객의 실내 관광지 출입을 제한했고, 여객선이 왕래하는 국제여객터미널과 지역 항구에도 매표소와 승선 과정에서 2차례 열화상카메라로 발열체크를 하고 있다. 현지 렌트카업계에 따르면 제주에 들어와 있는 관광객 태반은 서울 등 수도권에서 온 이들이다.
목포와 제주를 잇는 여객선사 씨월드 정운곤 상무이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승객 안전을 위해 철통방역을 하고 있다"고 했고, 제주서 스포츠마사지 영업을 하는 전모(53)씨는 "수도권 온 손님은 체온 검사를 두 번이나 한다"고 말했다.
수해 복구에 손 하나가 아쉬운 재해 현장도 직격탄을 받고 있다. 전남도가 광복절 연휴를 맞아 하루 평균 2,000~3,000명의 일손이 찾는 구례와 곡성, 담양 등 수해 복구에 '외부' 자원봉사자를 당분간 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사실상 수도권 자원봉사자들을 겨냥한 조치다.
도에 따르면 16일에도 군인 1,299명과 공무원 1,035명, 민간인 556명이 피해 현장에서 땀을 흘렸지만 앞으로는 복구작업도 강화된 방역지침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전남도 관계자는 "좋은 뜻으로 수해현장을 찾는 분들의 손길이 자칫 감염의 불씨가 될 수 있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며 "22개 전남 지자체와 힘을 모아 복구인력 공백을 메우겠다"고 말했다.
피해 주민들은 발을 구르고 있다. 구례 5일장의 한 상인은 "코로나19가 무섭기는 하지만 자원봉사자 없이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언제 치우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방에서는 '수도권 방문'은 지역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는 금기시 되는 분위기다. 경남도, 울산시, 전남 목포시 등 각 지자체는 '수도권 방문을 자제' 문자 메시지를 시민들에게 발송하고, 방문자는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을 것을 당부했다.
이달 중순 서울 사는 친오빠 가족의 부산 방문을 앞두고 예정된 식사와 만남을 취소한 김모(46ㆍ부산 동래구)씨는 "한 해에 3, 4번은 오빠 가족을 만나는데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본 적이 없다"며 "내년 설에라도 만나면 다행"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