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제든 일본과 마주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며 일본과의 대화ㆍ협력을 강조했다.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한 '정치적 해법 도출'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원칙적 발언이다. 동시에 문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에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방침을 재확인해 단시일 내 일본의 호응을 끌어내긴 어려울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0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언급하고 "정부는 사법부 판결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원만한 해결 방안을 일본 정부와 협의해왔고, 지금도 협의의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대일 메시지는 극일(克日)을 내세웠던 최근 기류에 비해 상당히 유화적이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달 4일 일본제철 자산 압류 명령 효력이 발생한 뒤 한층 높아진 양구간 긴장감을 일단 '관리'하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언제든 대화하겠다"는 발언으로 협상 여지도 큰 틀에서 열어 두었다.
그러나 일본이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 대통령이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기존 대원칙을 재차 못박은 만큼, 일본이 움직일 공간은 별로 없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16일 "문 대통령의 경축사에선 '개인의 배상청구권 문제에 대해선 양보하지 않겠다'는 단호함도 엿보였다"면서 "일본과의 협상 접점을 현재로선 찾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타협안 도출을 위한 외교적 환경이 무르익지 않은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16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이번 경축사에 대해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역시 양보할 의향이 없다는 뜻을 되풀이한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일본이 종전(패전)기념일이라고 부르는 15일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神社) 신사에 공물을 보냈다. 일본 현직 각료들은 직접 참배했다. 아베 총리가 공물을 보낸 것은 연례적이지만, 각료들의 직접 참배는 4년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