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학로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장 찾기만큼 쉬운 일이 또 있을까. 어느 골목이 유난히 인파로 북적거린다면, 틀림없이 그곳이다. 원래도 인기작인데 안방 스타로 거듭난 뮤지컬 배우 전미도(38) 덕분에 대학로 전체가 들썩이게 만드는 작품으로 거듭 났다. ‘전미도 효과’라는 말이 나온다.
“tvN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저를 알게 된 분들이 예전 뮤지컬 영상을 찾아 보고 실망하면 어쩌나 살짝 걱정했어요. 다행히도 저 때문에 뮤지컬에 관심이 생겨 제 공연뿐 아니라 다른 작품까지 관람했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코로나19로 힘겨워하는 공연계에 작게나마 도움이 돼 기뻐요.”
최근 신사동 카페에서 마주한 전미도의 얼굴에 뿌듯한 웃음이 번졌다. 동숭동 예스24스테이지에 오르고 있는 ‘어쩌면 해피엔딩’은 전미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작품이다. 2015년 초연은 물론, 그 이전 시범 공연 때부터 참여하면서 극을 함께 만들었고, 이 작품으로 한국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도 받았다. 올 시즌 출연 제안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드라마 마치고 때마침 스케줄이 딱 맞았어요. 예전 공연 때 아쉬웠던 지점들을 해결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무엇보다도 대본이 너무 좋아요.”
‘어쩌면 해피엔딩’은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낡아서 버려진 로봇 클레어와 올리버의 사랑 이야기다. 로봇이라서 알지 못하리라 믿었던 사랑과 이별을 겪으며 아파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에 극장은 매번 눈물바다가 된다. 얼마 전 함께 공연장을 찾았던 ‘미도와 파라솔’의 ‘파라솔’ 조정석,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도 눈이 빨개져서 돌아갔다.
어쩌면 흔하디 흔한 로맨스물이라고도 할 법 한데, 왜 이토록 가슴을 울리는 걸까. “때 묻지 않은, 우리 안의 순수를 일깨우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무대 위에서도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이라는 부분을 최대한 강조해 표현하려고 해요. 조금만 불순물이 들어가도 관객들은 금세 알아채거든요. ‘어쩌면 해피엔딩’은 저에게 순수함을 잃지 않도록 해 주는 작품이에요.”
로봇에다 자유롭게 감정을 넣었다 빼는 전미도의 빼어난 연기도 빠질 수 없다. 녹슬어서 삐걱대는 걸음걸이에서부터 알 수 없는 사랑에 빠진 달콤한 표정을 거쳐 기억을 지운 뒤 쓸쓸함까지. 한껏 높아졌을 팬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전미도는 뮤지컬계에서 ‘현실판 채송화’로 통한다. '슬의생'에서 연기한 채송화가 괜히 나온게 아니다. 공연장에서도 양희준, 한재아, 강혜인 등 함께 연기하는 후배들과 고민을 나누고 진심으로 격려했다. 전미도는 “내 데뷔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며 생긋 웃었다. “그땐 저도 잘하고 싶은 마음에 조급했어요.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성장할 수 있었지만, 자신감을 갖고 즐기면서 했다면 어땠을까 아쉽기도 해요.”
전미도의 출연작이 다채로운 것도, 이런 쉼 없는 노력의 결과다. 10여년간 출연한 연극, 뮤지컬이 30여편에 이른다. ‘영웅’ ‘닥터 지바고’ ‘번지점프를 하다’ ‘베르테르’ 외에는 두 시즌 이상 무대에 오른 작품이 거의 없다. 그는 “새로운 작품에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 가는 재미와 성취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을 마친 뒤 전미도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촬영을 시작한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전미도도 두근두근 설레며 기다리고 있다. 전미도는 “채송화 같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어린 팬이 많다”며 “드라마의 힘을 제대로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런 전미도의 꿈은 80세까지 연기하는 것이다. “나문희, 김혜자 선생님 나이가 됐을 때, 내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연기를 할까 궁금해요. 그때까지 배우로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게 저의 ‘해피엔딩’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