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열강들의 ‘데이터 전쟁’이 날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미국은 자국민의 개인정보 유출과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화웨이에 이어 틱톡과 위챗 등 중국 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를 이어 가고 있으며, 데이터 절도 근거지로 지목된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했다. 그동안 중국 내에서의 해외 앱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자국 내 모든 IT기업에 대해 정부와 공산당이 요구하는 데이터 제출을 의무화해 온 중국의 입장에서는 뿌린 대로 거두고 있는 셈이다.
미중의 데이터 패권주의에 맞서 자국의 데이터를 뺏기지 않으려는 ‘데이터 민족주의’ 역시 급부상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통해 거주민의 개인정보를 역외로 반출하지 못하게 처벌을 강화하는 한편 유럽 내 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외에도, 호주와 러시아, 베트남 등 여러 국가들이 자국민 데이터를 주권 범위로 한정 짓는 법률을 제정하고 데이터 자원의 해외 유출을 막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월드와이드웹(WWW)이 도입된 지 불과 30여년 만에 데이터가 세계 경제를 이끄는 핵심자원으로 부상했음을 반증한다. ‘21세기 원유’로도 불리는 데이터가 토지, 노동, 자본 이상으로 중요한 생산요소가 되고, 데이터 자체가 화폐처럼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데이터 자본주의’로의 전환마저 예견되고 있다. 특히,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생성되는 ‘이용자 데이터’는 미래의 ‘잠재적 소비자 데이터’이자 맞춤형 서비스와 차별적 광고 제시가 가능한 ‘개인 데이터’이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가 매우 높다.
우리나라도 이달 초 시행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ㆍ정보통신망법ㆍ신용정보법) 개정안’을 통해 이제서야 비로소 가명정보(비식별화된 개인정보)를 통한 데이터의 수집과 활용에 대한 법적근거를 마련하게 되었다. 데이터 융합에 따른 다양한 혁신 서비스 발굴과 신사업 창출이 가능한 데이터 구동형 경제로의 첫걸음을 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데이터3법의 시행과 함께 출범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통해 이제 우리도 유럽, 캐나다, 호주, 일본 등 주요국들과 같이 개인정보를 전담하는 독립기구를 갖추게 되었으며, 개인정보의 오남용 및 유출을 감독하고 적극적으로 데이터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데이터3법의 시행을 바라보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시민단체들은 금번 시행령을 ‘개인정보도둑법’이라 칭하며, 국민의 동의없이 특정 기업들에 이익을 몰아준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은 이미 소리없이 우리 국민의 데이터를 채굴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기업들이나 개인정보 무단 수집 및 해외 유출도 서슴지 않는 틱톡, 유라이크 등 중국 서비스들과 같은 국경 밖의 진짜 도둑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이들이 ‘잠재적 개인정보 도둑’으로 간주하는 우리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혁신적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자 노력하며 일자리 창출을 견인하는 국가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국경 밖의 진짜 도둑으로부터 데이터 주권을 사수할 수 있는 ‘내 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정부와 기업은 이제 막 첫발을 뗀 데이터 경제가 이러한 우려와 불신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철저한 보안과 투명성 보장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이끌어 내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