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에 밀린 월풀 "한국 세탁기 관세 연장해달라"

입력
2020.08.1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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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월 세이프가드 종료에 '발버둥' 
미국서 생산하는 삼성ㆍLG 타격 없을 듯


올 상반기 LG전자에 세계 1위 가전업체 자리를 내준 미국의 ‘월풀’이 자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연장을 신청했다. 세탁기의 대명사로 불렸던 '월풀'이 미국 세탁기 시장에서도 한국 브랜드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자 세이프가드 연장 카드를 꺼낸 것으로 풀이된다.

13일 가전업계에 따르면 월풀은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ITC에 "한국산 가정용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를 연장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했다. 세이프가드는 수입업체가 제품을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판매해 자국 제조업체가 피해를 봤을 때 발동되는 조치다. 미국에서 세탁기 세이프가드는 지난 2018년 2월부터 발효돼 3년을 거쳐 내년 2월 종료를 앞두고 있다.

이번 청원은 내년 2월 세이프가드가 종료될 경우 월풀의 매출이 위축될 가능성을 우려한 조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지난 6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라이드에 있는 월풀 세탁기 생산 공장을 방문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끔찍한 합의”라고 언급하며 LG전자와 삼성전자를 거명하기도 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세이프가드 필요성과 함께 보호무역주의 방침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현재 세이프가드로 대형 가정용 세탁기 완제품 기준 수입물량 120만대까지는 관세가 16%, 그 이상은 40%가 매겨진다.

미국 세탁기 시장은 사실상 한국 브랜드가 점령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에 따르면, 올 1분기 미국 세탁기 시장에서 1위는 삼성전자(점유율 21%)가 차지했고 2위는 LG전자(17%)다. 월풀(16%)은 3위에 머물렀다.

월풀은 올 2분기 매출액도 1년 전보다 22% 감소한 40억4,200만달러(약 4조9,000억원)로, LG전자 생활가전(H&A) 부문 2분기 매출액(5조1,551억원)에 역전당했다. 2년 연속 상반기 기준 세계 가전 시장 1위를 LG전자에 내준 것이다.

가전업계에서는 세탁기를 처음 개발해 ‘세탁기의 역사’로 불리는 월풀이 시장 장악력을 잃자 세이프가드 연장을 신청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결국 세이프가드 3년 차에도 사실상 큰 이익을 얻지 못하면서 연장 청원을 하며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한 가전업계 관계자는 "텃밭인 미국에서도 한국 업체들에 밀리면서 초조해진 월풀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이프가드가 연장되더라도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기업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세이프가드를 피하기 위해 미국 판매 물량을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18년 1월부터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가전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고, LG전자도 지난해 5월 미국 테네시에 세탁기 공장을 준공해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국에 판매하는 세탁기는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에서 대부분 공급하고 있고, 일부 물량만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에서 공급한다"고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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