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상추 들었다 놨다... 길고긴 장마에 밥상까지 울상

입력
2020.08.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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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들 물량 부족 사태... 채소 가격 급격히 올라
복구 길어지면 추석 물가까지 위협 "가격 안정화 총력"


대형마트들의 농산물 가격 방어에 비상이 걸렸다. 기록적인 폭우에 산지에서 침수 피해가 발생하고 긴 장마로 작물 생육도 부진한 여파가 대형마트의 장바구니 물가 상승까지 이어지고 있다. 산지에서 생산돼 마트로 들어오는 물량이 크게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피해가 조금이라도 덜 심각한 산지를 찾아야 하는 바이어들이 전국 팔도를 돌고 있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1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가 이날 채소류 등 주요 농산물 가격표를 일제히 올려 걸었다. 마트들은 주 단위로 농산물 판매가격을 책정하는데, 보통 매주 목요일 변경된 가격을 적용하고 이를 다음 주 수요일까지 유지한다. 마트마다 판매 품목과 확보 물량이 달라 상승폭에는 차이가 있지만, 적게는 4, 5%에서 25~30%까지 치솟은 품목도 있다.


최근 도매시장에서의 농산물 가격 급등세는 장마가 길어지기 시작한 7월 말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유통정보(12일 기준)에 따르면 시금치 4㎏당 평균 도매가격은 4만5,420원으로, 한 달 전(2만2,460원)보다 2배 넘게 올랐다. 청상추(4㎏)는 같은 기간 3만20원에서 5만2,000원으로 뛰었다. 얼갈이배추(4㎏)는 8,732원에서 1만6,960원으로 인상률이 94.2%에 달했다.

대형마트 농산물의 경우 도매시장에서 바로 떼오는 것보다 사전에 산지 업체와 계약해 대규모로 공급받는 계약재배 매입 물량이 훨씬 많다. 그래서 평소 도매가 대비 가격 변동의 영향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올 여름엔 이례적으로 지난주까지 긴 장마가 계속되면서 계약된 산지의 수확량이 부족해진 상황이 그대로 가격에 반영된 것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지난주까지는 매입해 둔 물량으로 어떻게 해서든 버텨왔는데, 이번 주는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실제 이마트의 경우 지난 6일 3,980원이었던 배추 한 포기 가격이 이날 4,980원으로 25.1% 증가했고, 고추(1봉)도 1,980원에서 2,480원으로 25.3% 올랐다. 롯데마트는 파프리카 값이 개당 1,380원에서 1,800원으로 가격 상승폭이 30.4%를 기록했고, 상추는 19.0%(3,680원→4,380원), 대파는 16.8%(2,980원→3,480원)씩 상승했다.

홈플러스도 배추, 상추, 고추 등 밥상에 자주 오르는 채솟값 상승을 피하지 못했다. 배추는 포기당 4,290원이었던 가격을 4,990원으로, 상추는 3,990원에서 4,690원, 고추는 1,790원에서 1,990원으로 올렸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감자 등 수확 시기를 조정해 사전에 많이 확보해 둘 수 있는 품목과 달리 채소는 지난주에 수확해 이번 주에 내놔야 하고 소비자들도 그때그때 사야 하는 품목이라 가격 상승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밥상 물가 안정화가 시급해진 마트들은 마진을 최소화하면서 매입 물량을 조절하거나, 아예 새로운 산지 계약재배를 따내기 위해 전국 곳곳에 직원들을 보내고 있다. 장마가 끝나더라도 복구 기간이 길어지면 상품성이 떨어져 가격 상승세가 더 길어질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산지를 찾는 게 중요해진 것이다. 폭우 피해가 큰 경기 지역을 대신할 수 있는 공급처를 최근 충남 논산, 경남 밀양 등 전국 8도의 산지로 넓히는 비상대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바이어들이 매일 새 산지 발굴에 발품을 팔고 있다"며 "신선식품 보관 시스템에 저장해 둔 물량을 풀면서 최대한 가격 증가세를 늦추고 있지만, 장마가 갑자기 다시 시작되거나 예상보다 복구 기간이 길어지면 추석 물가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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