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장 '41% 발언', 정말 문제일까

입력
2020.08.12 18:00
26면
공약이라고 무조건적 이행이 답은 아냐 
탈원전 옳아도 절차적 타당성은 따져야 
다수결 내세운 여당 입법 독주도 멈춰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선출직은 모든 공약을 꼭 지켜야 할까. 공약을 지키지 못하면 이유 불문하고 비판을 받아야 하나. 이 물음이 늘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시민단체들이 공약이행률을 선출직의 성적표로 제시할 때마다 선뜻 수긍이 어려웠다.

발끈할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어떤 반문이 나올지도 안다. 유권자들의 엄중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냐. 공수표처럼 공약을 남발해도 된다는 말이냐.

따져 봐야 할 게 있다. 유권자들은 후보자와 공약을 분리해서, 또 공약별로 발라내서 투표를 할 수 없다. 이런 질문을 해 본다. 당신은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할 때 그 후보자가 내건 모든 공약에 동의를 했는가. 혹시 그 후보자를 지지하지만 동의하기 어려웠던 공약이 있었던 적은 없었는가. 잘 몰라서, 혹은 충분한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의견을 내기 힘든 공약은 없었는가. “우리 OO,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열렬 지지층의 조건 없는 애정 표현은, 뒤집어 말하면 개별 공약(정책)은 그들의 판단 잣대가 아니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공약의 중요성을 폄훼하자는 게 아니다.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과, 무조건 지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막상 공약을 추진하려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현실적 문제에 부딪칠 수 있다. 그 공약을 뒷받침했던 통계가 뒤집힐 수도 있다. 공약이니까, 그럼에도 강행하라며 등을 떠미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최재형 감사원장의 ‘41% 발언’ 여진이 잦아들지 않는다. 최 원장이 감사위원회 직권심리에서 월성1호기 조기 폐쇄를 두고 ‘대선에서 41%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민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대통령이 시킨다고 다 하냐’고 말했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최 원장의 해명엔 온도 차가 있다. 대선을 통해서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고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은 사안이라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얘기에 '문재인 대통령 대선 지지율이 41% 정도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아는데, 과연 국민 대다수라고 할 수 있느냐'고 말한 게 관련된 내용의 전부라고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최 원장이 개인 소신을 배경에 깔고 결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적절한 발언을 한 건지, 아니면 중립적으로 사안을 다뤄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 발언인지는 분명히 따져 봐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해석을 발라내고 발언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그리 틀린 말로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득표율이 41%가 아니라 그 두 배인 80%였다 한들, 정부의 모든 국정과제가 국민 합의를 얻었다는 전제하에 무조건 밀어붙여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탈원전이 국민 대다수의 동의를 구한 공약이고 올바른 방향의 정책이라 해도, 정부가 적절한 절차를 거쳐 탈원전 정책을 이행했는지를 감사기관이 따져 보는 것까지 방해해서는 곤란하다.

총선에서 176석의 막강 의석을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더불어민주당의 거칠 것 없는 입법 독주 또한 같은 맥락일 수 있다. 과연 민주당에 표를 몰아준 국민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법안-예를 들어 부동산법안-조차 세심한 검토 없이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는 것을 기대했을까. 축조심의를 언급하며 "저라면, 이런 점들을 점검했을 것입니다"라던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의 국회 발언이 명연설로 회자된 건 그에 대한 답일 것이다.

민주당 당권에 도전하는 이낙연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최 원장 발언을 두고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 놀랐다”고 했다. 같은 당 김해영 최고위원은 국회 독주를 두고 “다수결 원칙은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적어도 민주주의의 해석에 대해선, 김 최고위원의 발언을 지지한다.

이영태 뉴스룸3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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