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음모론

입력
2020.08.11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조국 서울대 교수의 ‘문재인 대통령 탄핵 음모론’은 역풍을 부르는 주문이었을까. 그는 "지난해 검찰 수뇌부가 4·15 총선에서 여당 패배를 예상하고 (대통령 탄핵) 노선을 설정했으며,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공소장에 문 대통령을 35회나 적시해 탄핵 밑자락을 깔았다"고 주장했다. 당장 ‘김어준급 음모론’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탄핵을 무슨 검찰이 하나”라며 "채널A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정권이 위기의식을 고취시켜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 탄핵은 국회가 소추하고 헌법재판소가 심판하는 게 사실이나,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다. 국민 여론이 대통령 하야와 탄핵 사이에서 엇갈리고 국회는 눈치만 보며 머뭇거리던 2016년 11월 20일 검찰은 최순실씨를 기소하며 박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더구나 공소장을 전격 공개해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뚜렷해진 탄핵 외침에 국회는 12월 3일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공소장 내용을 언급했다. 검찰이 중대 변곡점을 제공한 셈이다.

□ 탄핵심판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함의를 띤다. 검찰의 대형사건 수사 역시 마찬가지다. 탄핵이란 파면 절차이고, 헌재는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만을 그 사유로 인정한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는 기각됐고 오히려 역풍이 불어 열린우리당 총선 압승을 가져왔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은 초유의 파면과 보수진영 궤멸이라는 결과를 맞았다. 헌재가 인용한 탄핵 사유는 한 가지, 최씨 국정 개입을 허용하고 은폐함으로써 대의 민주주의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점이었다.

□ 지금 대통령 탄핵이 실현되리라는 생각은 조 교수도 하지 않을 것이다. 총선에서 통합당이 승리했어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정치 검찰’의 행태를 지적하려는 게 조 교수의 요점이었을 것이다. 지지층의 위기의식을 자극할 의도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그가 철 지난 기사까지 공유해 가며 검찰의 탄핵 음모를 강조할수록 지지층 아닌 국민은 ‘그렇게 대통령의 선거 개입이 심각한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탄핵 음모론’은 이중적 메시지를 주고 있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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