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섬' 모리셔스 주민들이 대형 사탕수수 자루를 만든 이유

입력
2020.08.10 00:00
좌초선박 유출기름 방지용 주민들 발명품
야생동물 보호 노력에 국제사회 지원 절실


인도양에 접한 아프리카의 섬나라 모리셔스 해안가에 거대한 사탕수수 자루로 된 장벽이 등장했다. 지난달에 인근에서 좌초한 일본 선박으로부터 유출된 기름으로부터 야생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민들이 묘안을 짜내 만든 일종의 발명품이다.

AP통신은 9일 "모리셔스 주민들이 기름 유출로 야생동물들이 위험에 처하자 길다란 자루에 사탕수수 잎을 채워 임시로 장벽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기름이 유출된 곳에 이 자루를 던져 잠시나마 퍼지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한 때 '사탕수수의 나라'로 불렸던 모리셔스 주민들다운 아이디어다.

천상의 섬으로 불리는 모리셔스는 이번 기름 유출 사고로 아름다운 자연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 모리셔스 정부는 이날 '환경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프랑스에 지원을 요청했다. 또 선박이 좌초된 위성사진을 공개하며 "습치 근처의 청록색 수역에 어둡게 기름이 퍼지는 모습이 매우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자연생태계가 위험에 처했으니 행동에 나설 때"라고 트윗을 올리는 등 적극적인 지원 의사를 밝혔다.

기상이 악화하면서 선박이 갈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모리셔스 주민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자원봉사자들은 수십마리의 새끼 거북이와 희귀 식물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작업부터 진행했다.

모리셔스 주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은 그러면서도 정부의 굼뜬 조치에 의문을 갖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비상사태 선포만 해도 선박이 좌초된지 13일만에 취해졌다. 일본 나가사키해운의 대형선박 와카시오호는 중국에서 4,000톤의 연료를 싣고 브라질로 향하다가 지난달 25일 모리셔스 해안의 산호초에 좌초됐다.


뒤늦게 국제사회에 기름 유출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 모리셔스 정부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더해 이번 유출 사고로 인해 관광객이 더 줄어들 수 있어서다. 프라빈드 주그누스 총리는 "우리는 좌초된 선박을 다시 끌어올릴 기술과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서 "기상이 악화될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우려스럽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긴박해지자 환경단체인 그린피스 아프리카는 기름 유출의 심각성을 동영상을 통해 온라인에 공유했다. 영상엔 더 많은 사탕수수 자루를 만들기 위해 분주한 주민들의 모습, 대형 사탕수수 자루로 기름이 해안가에 밀려들지 못하게 하는 막는 모습 등이 담겼다. 해피 캄플레 그린피스 기후ㆍ에너지 담당자는 "수천 종의 생물들이 오염된 바다에서 죽을 위기에 처해 있으며, 모리셔스도 경제와 식량안보,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나가사키해운 측은 "환경오염의 책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해양환경을 보호하고 더 이상의 오염을 막기 위해 협력기관 및 계약업체와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모리셔스 해양보존협회와 다른 지역 단체들은 이 정화 작업이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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