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주(州)가 최대 이익단체인 미국총기협회(NRA) 해산을 추진한다. 지도부가 수백억원이 넘는 공금을 빼돌렸다는 게 표면적 이유지만, 이 참에 총기 사용을 옹호하는 NRA를 단단히 손보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미 정가의 오랜 쟁점인 ‘총기 규제’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라 3개월밖에 남지 않은 대선에도 새 변수로 떠올랐다. 당장 지지율 추락에 허덕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엄청난 호재를 만난 듯, 대선 맞상대인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공격하는 소재로 활용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라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은 6일(현지시간) 주 법원에 NRA 해산을 요구하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소속인 제임스 장관은 “전ㆍ현직 지도부가 막대한 공금을 수년간 개인적으로 유용했는데도 관리ㆍ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소송 사유를 설명했다. 그는 특히 “부패가 너무 심해 완전한 조직 해체가 불가피하다”고 말해 1871년 출범해 150년 역사를 가진 NRA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주정부는 지도부 비리 탓에 NRA가 지난 3년간 6,300만달러(약 747억원)가 넘는 손실을 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소장에는 웨인 라피에어 부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존 프레이저 법률고문, 윌슨 필립스 전 최고재무책임자(CFO), 조시 파월 전 전무이사 등 NRA 전ㆍ현직 최고위 간부 4명의 이름이 적시됐다. 뉴욕주는 이들의 불법 이익과 재임 시절 받은 급여 전액을 반환하게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NRA는 즉각 반발해 격렬한 법정 다툼을 예고했다. 캐롤린 메도우스 NRA 사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번 소송은 정치적 점수를 얻기 위한 시도”라며 “우리는 움츠러들지 않고 싸워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NRA가 미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총기 규제 반대 캠페인과 로비에 매년 2억5,000만달러(약 2,965억원)를 쏟아 부을 만큼 엄청난 자금력을 자랑한다. 총기 규제를 옹호하는 단체의 지출을 다 합쳐도 NRA 예산에 훨씬 못 미친다. 회원수도 500만명에 달해 소송 직후 총기 규제를 지지하는 민주당 안에서도 대선에 미칠 여파를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잘 아는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큰 ‘선물’을 받은 분위기다. 그는 이날 소송 관련 질문에 “매우 끔찍한 일”이라고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곧장 바이든 전 부통령을 향한 격한 성토가 이어졌다. 그는 트위터에 글을 올려 “극좌인 뉴욕이 NRA를 파괴하는 것처럼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수정헌법 2조는 없다”고 선거 쟁점화를 시도했다. 또 “(바이든 당선은) 당신의 총을 즉시 빼앗을 것이고 경찰에게도 총이 없을 것”이라며 지지층의 결집을 호소했다. 무기 소장 및 휴대 권리를 명시한 미국 수정헌법 2조는 총기 합법화의 근거가 된 조항이다.
다만 이번 소송의 파급력이 크지 않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NRA 해산 소송이 트럼프의 약세를 뒤집을 만한 변수는 될 수 없단 분석이 양당에서 모두 제기됐다”고 전했다. NRA 옹호자들이 이미 트럼프의 콘크리트 지지층과 겹치는데다 이번 대선에선 총기규제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경제가 주요 화두로 떠올라서다. 공화당 여론조사 전문가인 프랭크 룬츠는 “공화당 스윙보터(부동층 유권자)들은 총기 소유권은 중히 여겨도 NRA 조직 자체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