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둑 붕괴되면 마을 물바다” 밤새 공포에 떤 임진강변 주민들

입력
2020.08.0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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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잠기는 등 저지대 마을 침수 피해 잇따라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나 겁이 났어요. 혹시나 둑이 무너져 강물이 마을을 덮치지 않을까 밤새 불안에 떨어야 했어요.”

6일 물바다로 변한 경기 파주 파평면 율곡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임진강 쪽을 가리키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주민이 가리킨 강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2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폭우에 급격하게 불어난 강물이 흘러들어 마을은 짙은 황톳빛 흙탕물에 잠겼다. 진입도가 물에 잠겨 주민들은 걸어서 주변을 오갔다. 버스정류장도 물에 잠겨 제 기능을 잃었고, 윗부분만 남긴 채 물에 잠긴 승용차도 보였다. 마을 인근 임진강 뚝 너머 습지에 조성된 율곡습지공원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물에 푹 잠겨 있었다.

마을이 잠기자 주민들은 대부분 대피했다. 마을이장인 장모씨는 “20년 넘게 이 마을에 살았지만 임진강 수위가 이렇게 차 오른 것은 처음”이라며 “주민과 함께 몸만 빠져 나왔는데, 밤새 비가 퍼부어 집이 침수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돼 잠을 못 이뤘다”라고 말했다.



임진강 주변 마을은 대부분 비슷했다. 임진강 수위가 역대 최고치를 넘어서고, 홍수 경보까지 발령되자 강에서 300m 떨어진 적성면 두지리 마을 주민들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두지리의 한 주민은 “마을 바로 옆 강물이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 혹시나 마을로 범람하지 않을까,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고 했다. 마을은 이번 폭우로 농경지 6곳 360ha가 잠기고, 마을 도로의 제방이 무너지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연천군 임진강 변 저지대 마을인 왕징면 등에서도 음식점과 상가 건물이 물에 잠기는 등의 피해가 이어졌다.

아찔한 사고도 일어 났다. 이날 오전 6시30분쯤 파주 파평면 율곡습지공원 인근 도로를 지나던 버스가 물에 빠져 옴짝달싹 못했다. 물이 버스 안으로 급격하게 차오르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버스에 갇힌 기사와 승객 5명은 소방구급대원들에 의해 무사히 구조됐다.

임진강 홍수는 경기 북부에 폭우가 연일 쏟아진 탓도 있지만 북한 황강댐의 방류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경기도에 따르면 전날 임진강 수위 상승에 따른 대피령으로 파주와 연천 주민 1,466명이 긴급 대피했다. 주민들은 가재 도구도 챙기지 못한 채 인근 마을회관과 파평중학교 등으로 몸을 피한 채 밤을 지새웠다.



임진강 수위는 이날 들어 서서히 안정을 되찾고 있다. 전날 오후8시10분쯤 13.12m까지 차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최북단 필승교 수위는 10.42m까지 내려갔다. 임진강 홍수조절용 군남댐 수위도 전날 오후 11시 10분 역대 최고치인 40.14m를 기록, 계획홍수위(40m)를 넘어섰으나 이날 38.42m로 내려갔다. 파주시 관계자는 “오늘 밤에도 비 예보가 있어 임진강 저지대 마을의 침수피해가 우려된다”며 “수위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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