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후 "함께 모텔에 가자"며 회사 후배의 손목을 잡아끈 행위가 강제추행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손목'이 성적 수치심을 주는 신체 부위인지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당시 행위자의 고의나 의도에 따라 추행 여부를 판가름해야 한다는 판결이다. 그 동안 신체 어느 부위에 손을 댔느냐에 따라 추행의 여부를 판단한 하급심 판결에 경종을 울린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일부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7월 회식을 마친 뒤 후배 B씨와 단 둘이 남게 되자 "모텔에 가고 싶다"며 강제로 B씨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당시 B씨는 입사 3개월차의 신입사원이었다. A씨는 이후에도 회사 사무실과 또다른 회식 장소에서 B씨의 손과 어깨 등을 만졌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 3년 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회사 사무실에서의 행위만 추행으로 인정해 벌금 30만원으로 감형했다. 2심 재판부는 "B씨가 A씨를 설득해 귀가하는 택시해 함께 탄 사실로 보면 '항거를 곤란하게 한 뒤 추행한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손목은 그 자체만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신체부위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손목을 잡아 끈 부분을 무죄로 뒤집었다. 또다른 회식 장소에서의 신체접촉도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힌 혐의 중 "손목을 잡아끈 행위"를 유죄로 봤다. 대법원 재판부는 먼저 "특정 신체부위만을 기준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켰는지 여부가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손목을 잡아끈 행위에는 이미 성적인 동기가 내포돼 있어 추행의 고의가 인정된다는 설명이다.
이번 판결은 신체부위를 근거로 강제추행죄 성립 여부를 판단해 온 하급심 판결들과는 대비된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10월엔 수원지법 형사합의12부가 유흥주점(가라오케)에서 여성 후배의 손을 주무른 직장상사에게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손 자체는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신체부위로 보기 어렵다"는 게 당시 재판부의 판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