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의 매각 무산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대안으로 '국유화' 카드가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일부 국가들처럼 정부가 직접 지분을 소유하는 형태보다는 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이 대주주로서 경영을 맡을 거란 의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채권단 관리 아래 들어가더라도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 악화가 불가피해 혈세만 낭비할 가능성도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31일 금융권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을 두고 HDC현대산업개발과 금호산업이 갈등을 거듭하면서 매각 무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날 양측은 재실사에 대한 입장 차를 드러내며 보도자료를 통해 날 선 공방을 주고 받았다. 지난 26일 금호산업에 재실사를 요구한 현산은 닷새만에 입장문을 내며 “재실사는 동반 부실과 과다한 혈세 투입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자신들의 제안이 계약금 반환을 위한 명분 쌓기로 매도되는데 대해 유감을 표했다. 이어 “신뢰할 수 없는 재무제표에 근거한 막연한 낙관적 전망만으로는 결코 아시아나항공을 정상화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금호산업도 그간의 침묵을 깨며 즉각 반발했다. 금호산업 측은 “현산이 마치 충분한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거래 종결을 회피하면서 책임을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전가하고 있다”며 “진정성 있는 자세로 거래 종결을 위한 절차에 협조해달라"고 촉구했다. 또 현산의 재실사 요구에 대해서는 “이미 영업ㆍ재무 상태 등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이 때문에 결국 '노딜'로 귀결될 경우 아시아나항공을 당분간 정부 관리 하에 둘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는 정부 소유의 채권은행이 대주주로 관리하는 이른바 ‘채권단 관리 체제’가 될 거라는 의미다.
이 같은 전망은 현재 채권단 앞에 놓인 선택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거래가 무산돼도 최근 항공업계 사정상 새 인수자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이스타항공처럼 법정관리 등을 모색하기엔 아시아나항공의 덩치가 큰데다 국내 2위 항공사라는 상징성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시장에서는 산업은행 계열사로 우선 편입한 뒤 부실자산을 털어내고, 향후 산업이 정상화되면 매각에 나서는 ‘대우조선해양 시나리오’가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2008년 대우조선해양은 한화그룹이 인수를 추진하던 중 부실이 드러나며 거래가 성사되지 못했고, 이후 산은이 지분 56%를 보유하며 회사를 관리했다. 현재는 현대중공업 인수를 앞두고 기업결합심사 절차가 진행 중이다.
산은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은 지난해 4월 유동성 위기를 겪던 아시아나항공에 영구채 5,000억원을 포함해 1조6,000억원을 투입했다. 올해도 영구채 3,000억원을 추가 인수한 상태다. 영구채는 유사시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사채(CB) 형태인데, 이들이 보유한 영구채 8,000억원을 주식으로 바꾸면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 주식 약 36.99%를 보유한 최대 주주가 된다. 현 대주주인 금호산업(30.77%)을 훌쩍 뛰어넘을뿐 아니라, 만약 금호산업의 주식을 감자할 경우 지분율은 더 높아진다.
다만 항공업황 악화로 채권단이 언제쯤 회사를 재매각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항공업은 내년에도 흑자를 장담할 수 없고 대주주가 바뀌어도 경쟁력을 되살리는 데는 수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아시아나항공은 1분기 기준 부채비율이 6,279%에 달한다. 다른 항공사보다 10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재무구조 개선안은 인력 구조조정이지만 최근 노동시장 경직성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고강도 구조조정은 자칫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또 코로나19 여파로 희망퇴직, 자연퇴사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과 계열사를 분리 매각하는 방안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서는 에어부산, 에어서울, 아시아나IDT, 아시아나개발, 아시아나세이버, 아시아나에어포트 등 6개 자회사를 먼저 매각하고, 아시아나항공은 항공업이 ‘턴어라운드’ 된 이후 별도 매각을 점치기도 한다.
하지만 에어부산, 아시아나IDT를 제외하면 대부분 평가가치가 높지 않다. 에어서울의 경우 창립 이후 적자만 기록했고, 운항 노선에 대한 매력도도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선진국은 1980~90년대 항공사 민영화가 이뤄졌는데, 국유화는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고 역사적으로 국유화 성공사례도 찾기 어렵다”며 “대우조선해양처럼 투자, 발전 없이 세금만 축내는 기업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