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개포동 일대 공인중개사무소에는 '임대차 3법' 관련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일찌감치 세입자를 빼 내려는 집주인도 많았다. 계약갱신청구권 거부 사유인 '집주인 혹은 직계존속ㆍ비속 거주' 카드를 쓰겠다는 것이다.
특히 입주 개시 2년 미만인 신축 아파트의 임대인은 크게 동요하는 분위기다. 래미안블레스티지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A씨는 "내년 2월부터 전월세 계약 만기가 도래하는데, 그간 전셋값은 전용면적 113㎡ 기준 8억원에서 14억원으로 뛰었다"며 "임차인에게 당장 집을 비워주면 부동산 중개수수료와 이주비까지 부담하겠다는 임대인이 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국회가 단 이틀 사이에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광속'으로 통과시키면서 전월세 시장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당장 계약갱신청구권을 둘러싸고 임대인과 세입자 간 분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서둘러 혼란을 최소화할 보완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회는 30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최소 4년간의 임대기간 보장, 임대료 인상률 5% 이내 제한 등을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지 하루 만이다. 정부는 31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개정안을 의결한 뒤, 곧장 시행할 예정이다.
일선에선 이미 곳곳에서 법의 허점을 이용한 '꼼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재건축을 앞둔 서울 아파트 집주인 사이에선 불법 위장전입마저 거론된다. 올해 말 최초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는 사업장부터는 2년 이상 거주해야 조합원 분양 자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주소만 옮기고 빈집으로 두겠다는 지방 거주 집주인도 있다"며 "난색을 표하니 '조합원 자격 못 받으면 책임질 것이냐'고 겁박한다"고 토로했다. 임차인의 전세대출 만기 연장 때 필요한 집주인의 대출 질권설정 동의를 거부하겠다는 임대인의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전월세 연장을 둘러싼 각종 분쟁도 불가피해 보인다. 계약갱신청구권 거부 사유로 법이 인정하는 '집주인 실거주' 확인과 '세입자의 임차 주택 고의 파손' 여부가 당장 쟁점이 될 전망이다.
특히 임차인이 의도적으로 집 공개를 거부하면, 임대인에겐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전언이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계약갱신 거절 사유 입증 책임은 임대인에게 있다"며 "세입자의 집 공개 거부와 전세대출 질권설정 거부 등은 극단적인 예시일 뿐"이라고 말했다.
소급적용의 예외 조항도 논란이 되고 있다. 임대인이 법 시행 전 제3자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면, 기존 세입자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문제는 계약의 기준이다. 만일 구두계약 수준이라면, 기존 세입자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 가락동 헬리오시티 내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전세 만기를 앞둔 임대인은 서둘러 '제3자와 계약했다'는 내용증명을 세입자에게 보내고 있는데, 금세 해결되긴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법적 소송이 줄이을 전망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계약금 수령 입증이나 계약서 등 임대인이 법 시행 전에 제3자와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면 계약갱신청구권 거부가 가능하다"며 "그 외의 경우에는 법원 판단을 거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조속히 일선의 혼란을 줄일 추가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대한부동산학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출 규제처럼 주택임대차보호법 적용 대상을 전세금에 따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일정 금액 이하 전셋값은 계약갱신청구권 등을 보장하되, 그 이상은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앞으로 3개월 정도는 임차인과 임대인 간 분쟁이 사회문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다"며 "전세보증금을 낮추는 대신 월세로 돌리도록 임대 구조를 바꾼 다음, 소득구분 없이 모든 임차인에게 월세에 대한 세액공제를 해준다면 갭투자도 크게 나타나지 않고 전월세 시장도 선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