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당신의 편에 서겠습니다" 서울시청 앞 가득 채운 보랏빛 연대

입력
2020.07.28 13:41
8면
8개 여성단체, 박원순 성추행·방임 의혹 규탄
직권조사 요청서 제출... "제도 문제도 다뤄야"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당신과 연대하는 사람은 많으니까, 너무 좌절하지 마시고 빨리 회복해서 일상으로 돌아오셨으면 해요."

28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만난 대학생 강나연(22)씨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피해자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이곳에 나왔다고 했다. 자신을 평범한 대학생이라고 밝힌 그는 한 손에는 보라색 우산, 한 손에는 '당신의 편에 서겠습니다'라 적힌 보라색 팻말을 들고, 보라색 티셔츠를 입고 광장에 섰다. 강씨는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 피해자 중심주의가 자리 잡지 못했다"면서 "피해자와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 및 이를 둘러싼 서울시의 방임 의혹에 분노한 시민들이 서울시청 앞에 모였다. 시청부터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보라색 우산 수백개가 도심 한복판을 출렁이며 보랏빛 물결을 만들었다.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8개 여성단체는 이날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장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촉구 공동행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운동가들과 200여명의 시민들은 행사의 상징 색깔인 '보라색'에 맞춰 보라색 상의를 입고 보라색 우산을 든 채, 보라색 손팻말을 들고 시청 앞에 모였다. 연대 메시지가 적힌 팻말들에는 '피해자의 용기 앞에서 도망쳐버린 가해자에게 함께 분노하겠습니다' '성폭력 없는 직장, 평등한 조직 여성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 등이 적혀 있었다.

진행을 맡은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서울시에 인권을, 여성 노동자에게 평등을 요구하기 위해 모였다"며 "성폭력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시스템과 사회를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진상 규명을 통해 여성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서울시가 돼야 하며, 이것이 한국 사회 전체로 확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이날 구호인 "서울시에 인권을, 여성노동자에게 평등을"을 외쳤다.

10여분 간의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은 서울시청에서 인권위로 행진을 시작했다. 비가 내렸지만, 이들의 발걸음은 힘찼다. 대학생 김세울(23)씨는 "공기 같은 성차별과 성폭력의 위협에 여성들은 항상 노출돼 있다"면서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저와 다른 여성들을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인권위 앞 공터에 다시 모인 참가자들은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한 인권위의 직권조사를 강력하게 촉구했다. 서울시 관계자들의 성추행 방임 및 묵인 의혹,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등 진상의 실체적 규명을 요구하는 동시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징계 절차 부재 문제 등 구조 개선 마련을 요구했다. 조사 범위의 제한이 있는 인권위 진정보다는 인권위가 직권조사에 착수하는 것이 더 적합한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인권위에 직권조사 발동 요청서를 접수한 피해자 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는 "직권 조사는 진정 형식보다 조사 가능 범위가 더 넓다"면서 "인권위가 직권조사를 통해 피해자가 주장하는 범위를 넘어 모든 사실 관계 포함 제도적 문제 등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를 모두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엽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