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영웅' 칭호받은 탈북자 전담 경찰관, 보호여성 성폭행 피소

입력
2020.07.28 14:54
서초서 A경위, 탈북 여성 2년간 성범죄 의혹
피해자가 경찰에 알렸으나 묵살 당한 정황도

오랜 기간 탈북자들의 신변 보호를 담당하며 '생활 속 영웅' 칭호까지 얻었던 전담 경찰관이 탈북민 여성을 장기간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피해자 측은 "경찰에 수차례 피해 내용을 신고했으나 경찰이 이를 묵인하고 조사를 미뤘다"며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최근 탈북민 김모씨의 월북 사태에서 경찰의 미비한 대응이 드러난 데 이어 보호 전담 경찰관의 성폭행 의혹까지 불거지며, 경찰의 안일한 탈북민 관리 체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경찰청은 탈북민 여성을 성폭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서초경찰서 소속 A(51)경위를 지난달 대기발령 조치한 뒤 감찰 중이라고 28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감찰 조사 중으로 (성범죄 혐의와 관련한) 세부적인 내용은 밝히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 등에 따르면 A경위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서초서 보안계 소속 탈북자 신변보호담당관으로 활동했다. 신변보호담당관으로 최장기간 근무 기록을 세우며 탈북민들의 팔다리가 되어 줬다는 뜻에서 '새터민 가제트'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A경위는 2018년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생활 속 작은 영웅' 시상식에서 상패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탈북민의 수호자 역할을 했던 A경위는 자신에 대한 탈북자들의 신뢰를 악용해, 탈북민 여성을 성폭행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피해 여성을 대리하는 전수미 변호사에 따르면, A경위는 북한 관련 정보수집 등을 명목으로 2016년 피해자의 집에서 피해자를 만나 처음 성폭행했고, 이후 약 2년간 10여차례에 걸쳐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가 이런 사실을 경찰에 여러 차례 알렸지만 묵살당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피해자 측은 A경위가 소속된 서초서 보안계, 경찰 관련 민원이나 비위를 접수하는 청문감사실에 성폭행 사실을 알렸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초서 관계자는 "올해 1월 피해자가 청문감사실에 성폭행 사실을 알려 형사 고소 절차를 설명했으나 고민해 보겠다고 한 뒤 다시 연락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전 변호사는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검에 강간, 유사강간 및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 혐의로 A경위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전 변호사는 "피해자는 여러 차례 가해자의 상급자와 보호담당관 등 경찰에 피해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묵인했다"라며 "약자에 대한 잔학한 성범죄를 공직자로서의 부적절한 처신 정도로 축소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고 경찰의 대응을 비판했다.

이승엽 기자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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