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 A씨는 연초에 큰아버지로부터 돈을 빌려 서울 시내 고가 아파트를 샀다. 차용증까지 썼지만 국세청은 A씨의 자금 출처를 의심했다. 국세청 조사 결과, A씨가 큰아버지로부터 돈을 빌리기 직전 A씨의 아버지는 큰아버지의 통장에 수억원을 입금했다. 여기다 A씨는 의사인 아버지의 병원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등록하고 실제 출근하지 않으면서 월급도 타 갔다. 국세청은 A씨가 ‘편법 증여’를 받은 것으로 보고 수억원대 증여세를 추징했다.
국세청이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변칙 탈세 혐의가 있는 납세자 413명을 세무조사 한다. 최근 주택시장 과열에 편승한 탈세 의심거래가 다수 포착됐기 때문이다. 특히 조사대상의 절반 이상이 학생, 사회 초년생인 20~30대로, 주택 구입을 위한 '편법 증여' 여부를 집중 검증할 계획이다.
28일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진행한 관계기관 합동조사 결과 탈세 의심자로 분류된 100명과 △다주택 취득자ㆍ자금유출 혐의 법인 65명 △고액 자산 취득 연소자ㆍ고액 전세입자 등 213명 △부동산 중개인ㆍ강사 등 35명이 이번 세무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국세청은 A씨와 유사한 편법 증여 의심 사례를 집중 조사한다. 국세청 자체 검증 결과 뚜렷한 소득 없이 고액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판단된 연소자(62명), 국토부 등 관계기관 합동조사 결과 편법증여 의심 탈세 혐의자(100명) 등이 대상이다. 연령별로도 20대 이하(39명), 30대(197명)가 전체 조사대상자(413명)의 절반 이상이다.
30대 직장인 B씨는 지방에 자본금 100만원짜리 1인 법인을 만든 뒤 법인 명의로 약 10채의 아파트, 주택 분양권을 사들였다가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국세청은 B씨가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를 회피하기 위해 법인을 설립한 것으로 봤다.
B씨가 세운 법인은 먼저 서울의 고가 아파트를 사들인 뒤, 이 아파트를 담보로 자금을 대출받아 아파트와 분양권을 늘려갔다. 이 중 법인이 처음 사들인 아파트는 B씨가 주주 차입 형식으로 보내준 자금이었는데, 국세청은 이 돈이 B씨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자금출처를 조사하다가 밀수꾼의 역외탈세를 적발해내기도 했다.
동대문 시장에서 의류 소매업을 하는 C씨는 지난해 사들인 강남 아파트의 자금 출처가 불분명해 국세청 조사를 받았다. 국세청은 국내에서 옷을 판 돈만으로는 아파트를 사기에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이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통해 입금되거나 중국인 소유의 계좌를 통해 들어온 사실도 의심을 샀다.
알고 보니 C씨는 동대문에서 무자료로 사들인 옷을 중국에 몰래 파는 밀수출업자였다. C씨의 계좌에 입금된 돈도 중국에서 위안화로 받은 옷값을 중국ㆍ국내의 ‘환치기’ 업자를 거쳐 세탁한 것이었다. 국세청은 C씨의 사업소득 탈루에 대해서도 소득세 등 수억원을 추징했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에서 부동산 취득자에게 자금을 빌려준 친ㆍ인척, 특수관계 법인까지 살펴 자금 조달 능력을 확인할 예정이다. 부동산 취득 자금이 적정한 차입금으로 확인돼 이번 조사에서 빠진 부동산 매수자도 향후 원리금 상환이 자력으로 이뤄지는 지 꾸준히 검증하고, 대리변제 등이 확인되면 세무조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서울과 중부지방국세청에서만 운영하던 부동산 거래 탈루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이달부터 인천과 대전지방국세청에도 설치했다. 최근 경기 서북부 지역과 충청지역에 퍼진 부동산 '풍선효과'를 감안해서다.
김태호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관계기관 합동조사로 대폭 늘어날 탈세 의심자료를 치밀하게 전수 검증할 계획"이라며 "법령 위반이 확인되면 관계기관에 통보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탈세한 경우에는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