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정우성 "남북미 정상회담까지... 극한직업이에요"

입력
2020.07.2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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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강철비2'에서 대통령 역 맡아


“영화에서 남북미 정상회담 장면을 찍고 나니 분단 문제에 대처해야 하는 대통령은 정말 외롭고 고독한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극한직업’이죠.”

29일 개봉하는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에서 남북미 정상회담에 나선 대통령을 연기한 배우 정우성(47)은 국가 정상을 간접 체험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분단 문제의 당사자이지만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무력감, 북한이나 미국과 달리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다 쏟아낼 수는 없다는 답답함, 국민의 높은 기대치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 등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26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 농 삼아 실제 정치는 어떠냐 했더니 “나와는 안 맞다” “너무 힘들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강철비2’는 평화협정을 위한 남북미 정상회담 중 북한 쿠데타 세력에 납치된 세 정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남한과 북한, 미국, 중국, 일본 간의 복잡한 국제 정치를 그린다. 쿠데타로 부상을 당한 ‘북한 1호’와 함께 남한으로 건너온 북한 정예요원으로 출연했던 전편과 달리 이번엔 북한 위원장, 미국 대통령과 핵잠수함의 작은 선실에 갇힌 남한 대통령 한경재를 연기했다.

전편에선 위급한 상황 속에서 감정을 거침 없이 쏟아낸다면, 이번엔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참는 연기를 선보인다. 그에겐 새로운 도전이었다. 정우성은 “한 장면씩 계산해서 연기하기보다는 큰 고뇌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민감한 국제정치를 다루는 영화인 탓에 출연을 주저하기도 했단다. 꾸준히 해온 난민 이슈 등에 대한 발언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던 일부 시각을 걱정한 것이다. “정치를 다루는 작품이니 영화가 온전히 영화로만 받아들여지려면 다른 시각이 개입되지 않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언젠가부터 제가 '정치적 발언을 하는 배우'라 규정돼서 양우석 감독에게 ‘내가 출연하면 어려운 길을 가는 거 아니냐'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물었죠.” 정우성은 ‘강철비2'를, 정치색을 빼고 봐달라 했다. 그는 “우리가 결국은 평화통일로 가야 한다는 신념을 넣으려 했지 좌우 어느 쪽으로 치우친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역사의 무게를 못 느낀 건 아니다. 그는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했다. 외세에 휘둘리며 불행하고 억울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우리 민족의 지난 세월, 그리고 지금 한반도가 직면한 현실, 거기에다 영화 내용이 교차하며 먹먹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한국 현대사, 그리고 꽉 막힌 남북관계를 반추하게 하지만, ‘강철비2’의 본령은 액션 스릴러다. 정우성도 이 영화의 최고 강점으로 “잠수함 액션”을 꼽았다. 21년 전 잠수함을 무대로 하는 영화 ‘유령’에 출연한 적이 있는 그는 “그때는 잠수함을 잘 모르고 상상만으로 연기했는데, 이번엔 실제 잠수함 견학도 해보고 훨씬 좋은 환경에서 연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전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흥행에서 크게 실패했던 아픈 기억이 있기에 ‘강철비2’ 개봉은 그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같은 플랫폼 다변화에 따라 영화나 극장 문화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에겐 ‘함께 본다’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가 있다고 봅니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극장에 간다는 게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새삼 느꼈어요.”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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