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전방위 ‘그린벨트 해제’ 압박에 대응해 생전 박원순 서울시장은 ‘4대문 안’ 개발 카드를 포함한 비교적 ‘파격적’ 수준의 부동산 정책을 준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4대문 안 개발’은 주변 주택 가격을 비교적 덜 자극하면서도 ‘직주근접’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다. 정부의 공급확대 정책에 부응도 하고 개발이 정체된 도심에 활기도 불어넣기 위한 다중포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실상 박 전 시장의 '마지막 작품' 발표 시기를 놓고 박 시장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던 별정직 공무원들과 시 공무원들 사이 갈등도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최병천 전 서울시 정책보좌관은 27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4대문 안 지역은 상업지구가 많아 용적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며 “박 시장은 의도적으로 시 중심부의 노른자위 땅을 내 놓을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공급 확대가 아닌 용적률, 층수 제한 등의 규제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공급을 확대하는 ‘박원순표’ 주택정책을 추진했다는 뜻이다. 박 전 시장은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 요청과 움직임에 “그린벨트 보호는 서울시의 철학”이라며 마지막까지 반기를 든 바 있다.
최 전 보좌관에 따르면 서울시는 도심 건물의 최대 용적률을 1,250%까지 풀어 도심의 고밀도 개발을 준비했다. 상업지역 용적률을 최대 800%로 정해놓고 있는 서울시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조치다. 도심 개발은 남대문ㆍ을지로ㆍ서대문ㆍ동대문권 등 4개 권역으로 나눠 논의했으며, 이 경우 소규모 필지를 모아 약 6,000가구를 도심에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시 산하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공재개발 형식으로 개발에 나서는 방식이다.
최 보좌관은 또 “상업지구는 현재 용적률 800%를 적용 받고 있지만, 주택공급활성화지구 지정을 통해 최대 1,250%로 잡을 수 있다”며 “상업지구이기 때문에 기존 주거용 건축물의 35층 제한 규정을 바꾸지 않고도 그 이상으로 지을 수 있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4대문 안 고밀도 개발 외에도 시가 소유한 부지도 최대한 활용한다는 것도 박 전 시장의 계획이었다. 대표적인 서울시 소유지는 마포구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DMC)와 강남구 삼성동의 서울의료원 부지로, 각각 7,000가구, 1만5,000가구를 지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최 전 보좌관은 “이 땅들은 모두 ‘노른자위’로 불리는 땅”이라며 “서울시는 이 땅들을 이번에 내놓는 것도 계획에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 부지에 지어진 주택을 지분적립 방식으로 분양, 정부 정책과도 차별성을 꾀하려고 했다는 게 박 전 시장 비서실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분양가의 일부만 낸 뒤 소유권을 챙기게 하되, 이후 단계적으로 전체 지분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 보금자리주택(분납형 임대아파트) 분양 당시 처음 선보인 것으로, 당시 20년 동안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분납할 수 있도록 한 방식이다.
실제 전 비서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같은 서울시 정책들은 정부의 6ㆍ17 부동산대책 발표 전부터 준비됐다. 한 관계자는 “당초 이 같은 내용들을 포함한 ‘박원순표’ 부동산 정책을 지난 13일 시장이 직접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유고 사태를 맞으면서 중단됐다”며 “국토부가 관심을 보이던 정책이었고, 그래서 박 시장이 돌아가신 뒤에도 별정직 공무원들이 국토부랑 직접 담판을 지어 발표할 계획까지도 세웠다”고 말했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 대행 등 시 공무원들이 뜸을 들였고, 시와의 채널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박 전 시장의 생전 ‘마지막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게 그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박 전 시장은 9일 실종, 숨진 채 발견됐다.
이 관계자는 또 “(서울시가 발표에 시간을 끌어) 고한석 비서실장이 단독으로 기자회견도 할 생각을 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박 전 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자신이 피소된 사실을 인지한 시점을 놓고 고 실장이 핵심 수사 대상이 되면서 이 같은 ‘박원순 마지막 작품’ 발표는 물거품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보도자료 작성까지도 합의가 됐었다”고 강조했다.
최 전 보좌관은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연구위원 출신이다. 지난 4월 서울시에 합류했다.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바닥 수준을 기고 있던 박 전 시장의 지지율 반전을 위해 영입됐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의 사망과 함께, 3개월 만에 면직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함구하고 있는 있는 정책들을 밖에서 밝히고 있는 데 대해 그는 “정부가 준비중인 주택 공급확대 정책에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전 보좌관의 이 같은 이야기는 동시에 현재 서울시가 그 만큼 정부와 대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토부 관계자도 서울시와 협의 여부를 묻는 말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정책 수립 과정에서 또 서울시와의 갈등 등 다른 오해를 살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그린벨트 해제 문제를 놓고 양측은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조만간 공개될 정부의 주택 공급확대 정책 발표를 앞두고, ‘박원순 없는’ 서울시도 어느 정도 그 틀에 맞춰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정부 공급확대 대책 발표가 30일쯤, 이르면 29일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가 먼저 발표하고 나면 시의 입장을 담아 백프리핑 형식으로 이야기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