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달군 건 다름 아닌 ‘박지원’ 이름 석자가 적힌 사인이었다. 2000년 6ㆍ15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대북 특사로 활약했던 박 후보자가 ‘북측에 30억 달러를 지원한다’는 비공개 합의서에 서명한 게 맞는지가 쟁점이었다. 박 후보자는 비공개 합의서에 대해 “기억이 없다”, ‘조작됐다’는 입장을 밝혔고 미래통합당은 거듭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저녁 진행된 비공개 청문회서도 관련 공방이 주를 이뤘다. 하태경 통합당 의원은 청문회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나 “박 후보자가 ‘20~30억달러의 북한 투자는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원론적 이야기는 있었다’고 말하며 관련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박 후보자는 실제 사인이 있는 합의문을 작성하지 않았고 당시 논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 조작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이 맞다면 박 후보자는 이날 ‘20~30달러 서명’과 관련해 “기억이 없다”→ “조작이다”→ “논의는 있었으나 서명은 안 했다”로 말을 바꾼 것이 된다. 이날 오전 청문회에서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정상회담 개최에 관한 ‘4ㆍ8 남북합의서’ 외에 별도로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있다며 ‘25억달러 투자’와 ‘5억 달러 제공’을 약속한 합의서와 박 후보자 사인이 담긴 합의서 2장을 공개했다. 이에 박 후보자가 보인 첫 반응은 “기억이 없다”였다.
이후 박 후보자는 오후 들어 속개된 청문회에서 해당 문건이 “저와 김대중 정부를 모함하기 위해서 위조했다고 생각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합의서 작성이 사실이라면 2003년 대북송금 특검에서 그 문제가 드러났을 거라고도 덧붙였다. “사본을 보내면 경찰과 검찰에 수사의뢰 하겠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정보위원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일보 통화에서 “하 의원의 브리핑이 와전됐다”며 “북측에서 10억달러 지원 이야기가 나와서 당시 박 후보자는 거절했다는 사실을 비공개 청문회에서 분명히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 후보자 발언의 취지는 정상회담이 잘 진행돼 남북관계가 개선된 후 북쪽에서 제안이 오면, ADB(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기구를 통해 투자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