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 목말랐던 팬들처럼 그라운드를 뛰는 선수들도 팬들을 애타게 기다렸다. 무관중 경기만 치르다가 올해 처음으로 팬들 앞에서 진짜 프로야구다운 경기를 뛴 선수들은 “집중력이 예전과 훨씬 달랐다”고 반색했다.
키움의 중심타자 박병호(34)는 제한적 관중 입장이 처음 허용된 26일 고척 롯데전에서 5타수 3안타 3타점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최근 10경기에서 타율 0.143(35타수 5안타)에 그쳤던 그는 "박병호, 홈런"이라고 외친 팬들의 응원을 받아 타격 슬럼프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였다.
박병호는 경기 후 “더 집중되고, (야구가) 재미있다는 걸 양팀 선수들이 느꼈을 것”이라며 “팬들 앞에서 좋은 플레이를 했을 때 다같이 기뻐해주는 힘을 무시 못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무관중일 때는) 집중을 하겠다고 해도 연습 경기하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손혁 키움 감독 역시 “팬들과 만나는 첫 경기에서 승리를 전해 드려 기분 좋다”며 “공격이 살아났고, 수비 집중력도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KT 내야수 황재균은 이날 수원 NC전에서 1회 솔로 홈런을 친 뒤 1루 관중석을 향해 헬멧을 벗어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또 선두 NC를 맞아 8회말 2타점 역전 결승타를 때린 KT 포수 장성우는 “선수들끼리 무관중 경기를 하다가 관중이 있는 경기를 겪어보니 ‘할 맛 난다’는 말을 많이 했다”며 “역시 팬들의 응원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장 수용 인원의 10%만 입장이 허용된 이날 3개 구장을 찾은 관중은 총 5,973명이다. 잠실 LG-두산전과 고척 롯데-키움전은 각각 전날 예매 시작 25분, 40분 만에 2,424장과 1,674장이 모두 동났다. 수원 NC-KT전은 수용 가능 인원 2,000명에 193명 모자란 1,807명의 관중이 자리를 채웠다. 키움은 온라인 예매자에 시즌권 소지자로 스카이박스에 들어간 팬들까지 합쳐 1,742명이라고 밝혔다. ‘고강도 사회 거리두기’를 시행 중인 광주(삼성-KIA전)와 대전(SK-한화)은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경기 성남에서 고척돔을 찾은 롯데 팬 최현지(20)씨는 “전날 예매에 성공한 뒤 너무 설레서 잠도 못 잤다”면서 “올해 롯데의 수도권 경기를 많이 챙겨보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지만 무산돼 아쉬웠다. 야구장에 와서 선수들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으니까 마냥 행복하다”고 미소 지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야구 갈증을 씻은 팬들은 관람석 음식물 취식 금지, 마스크 착용, 관람석 띄어 앉기 등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권고 지침을 잘 따랐지만 모두 준수하지는 못했다.
KBO는 유관중 시 ‘비말 분출이 우려되는 구호나 응원가, 접촉을 유도하는 응원을 제한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세우면서 “이런 수칙들을 지키지 않는 관람객에게는 경고와 퇴장 등 강력한 조치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사전에 공지했다.
하지만 관중이 자발적으로 단체 응원을 펼치는 건 어떻게 제재할 방법이 없었다. 경기 시작 전 선수 소개 때만 해도 함성보다 박수로 야구를 즐겼지만 개시 후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 하나에 점점 함성 소리가 커졌다. 롯데 팬들은 이대호 타석 때 상대 투수가 1루에 견제를 하자 롯데 특유의 “마!”를 단체로 외쳤다. 또 이대호 응원가를 부르며 “이대호, 홈런”이라고 소리쳤다.
홈 경기를 치른 키움과 두산, KT 응원단도 선수들이 등장할 때마다 응원가와 함께 치어리더의 율동으로 단체 응원을 유도했다. 이에 구단 관계자가 응원단에 단체 응원을 자제시키고, 전광판에 “비말로 인한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육성 응원은 자제 부탁 드린다”는 공지까지 올렸으나 경기 분위기에 휩쓸린 팬들을 물리적으로 제어할 수는 없었다. 경기 종료 후에는 수훈 선수 인터뷰를 지켜보기 위해 팬들이 대거 몰리는 상황도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