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3월 13일 새벽 3시쯤 뉴욕주 퀸스 지역 아파트 단지에서 캐서린 제노비스라는 28세 여성이 강도의 칼에 찔려 살해됐다. 제노비스는 35분간 세 번에 걸쳐 난자당하는 동안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허사였다. 비명 소리를 듣고 집안 불을 켠 주민들이 적지 않았지만 아무도 그를 도우러 내려오지 않았다. 이 사건은 뉴욕타임스가 ‘살인을 목격한 38명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자극적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크게 알려졌다.
□심리학자들은 모두들 누군가 다른 사람이 경찰을 불렀을 거라고 생각해 결과적으로 아무도 경찰을 부르지 않는 비극적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방관자 효과 또는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도움을 주겠지 하는 심리적 요인 때문에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 측이 지난 4년간 피해자의 고충 호소를 듣고도 묵살한 서울시 관계자들이 20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6층 사람들’로 불리는 정무직 참모와 인사담당자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네가 예뻐서 그랬겠지”라는 식으로 외면하거나, “남은 30년 공무원 생활을 편하게 해줄 테니 다시 비서로 와 달라”고 회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 20여명은 시민단체에 의해 성추행 방조 등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방관과 방조는 다르다. 제노비스 사건처럼 단순히 방관만 한 것으로는 처벌이 어렵다. 그럼에도 방조 혐의로 고발한 건 20여명이 피해 호소에도 불구하고 쉬쉬해서 지속적인 성추행이 가능하도록 만든 책임이 있다는 의미일 테다. 성추행을 방조하겠다(돕겠다)는 ‘고의’가 인정되지 않으면 처벌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도덕적 책임까지 면제되는 건 아니다. 고충 호소를 듣고도 ‘누군가 대신 하겠지’라는 생각이 피해를 키웠고, 결과적으로 박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귀결됐다. 길어지는 6층 사람들의 침묵은 방관에 대한 뼈저린 후회일까, 방조에 대한 소극적 부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