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000명씩 박사 나오는데… 가르치고 연구할 자리가 없다

입력
2020.07.28 10:00
내달 1일 강사법 시행 1년...  일자리 지키기도 힘들어져


“10년 전부터는 강사자리도 구하기 어렵더라고요.”

지방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가르치는 장열중(57·가명)씨는 대학내 ‘강사 입지’가 달라진 시기로 2010년 전후를 꼽았다. 박사과정을 수료한 1995년경 이미 대학 내 전임교원 자리는 '하늘의 별따기'가 됐지만, 당시 대다수 대학이 국어와 작문 등을 필수 교양수업에 포함시켜 강사자리를 구하기는 힘들지 않았다는 게 장씨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2010년 무렵부터 국내 박사학위 소지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지방대학에서도 교수는커녕 강사자리 조차 얻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장씨는 ‘3년 재임용 보장’기간이 지나 ‘고스펙’ 후배들과 강사자리를 다시 경쟁할 상황은 생각만해도 아득해진다고도 했다.

한국일보가 내달 1일 강사법 시행 1년을 앞두고 대학강사 3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강사 5명 중 1명만이 강사법 시행에도 실질적 고용안정을 체감한다고 대답했다(매우 그렇다 4.8%·약간 그렇다 17.4%). 3년의 재임용절차가 보장됐지만 대학 내 비정규직 신분은 그대로 유지되는데다, 지난 10년간 박사학위 소지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강사 일자리마저 지키기 쉽지 않아서다. 강사법 시행은 이들 강사의 취업환경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27일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 ‘한국 대학노동구조의 포용적 재구성’에 따르면 대학 전임교원은 2000년 5만7,097명에서 2018년 9만288명으로 3만여명 늘어난데 반해 같은 기간 일반대학원 박사학위 취득자는 11만3,799명으로 4배가량 급증했다. 보고서는 “박사학위 취득자 중 44.9%가 교수·연구원이 되기 위해 학위를 취득했다”면서 “매년 5,000~7,000명의 박사가 배출돼 교수·연구원자리를 상시 대기하는 상태가 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밀려드는 ‘외국 박사’까지 감안하면 국내 대학강사들의 입지는 더 심각해진다. 일례로 지난해 1월 기준 국내 대학 경제학 전공 전임교원 1,599명 중 해외 박사학위 취득자가 1,162명에 달한다. 다른 전공에 비해 취업경로가 좁은데다, 교원 선발 시 해외대학 박사학위를 선호하는 인문·사회계열의 경우 박사 구직난은 더 심각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교육부의 ‘계열별 강사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학 강사의 절반(49.6%)가량이 인문사회계열에 몰려있다. 이어 △예체능 24.7% △자연과학 13.4% △공학 10.7% △의학 1.6% 순이었다.

국내 대학출신 강사가 정규교수로 자리잡는 건 100명 중 1명에 불과하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9년 1학기 강사고용현황 분석결과’에 따르면 대학 강사는 5만8,546명에서 2019년 1학기 4만6,925명으로 줄었다. 줄어든 1만1,600여명 중 전임교원으로 이동이 732명, 비율로 따지면 1.25%에 불과했다.




대학 강사가 하나의 비정규 일자리로 고착화된 현실은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응답자 3명 중 1명(34.6%)이 16년 이상 강사로 재직했다고 대답했고, 11~15년 강의했다는 응답이 23.3%로 뒤를 이었다. 6~10년은 21.3%, 2~5년이 18.3%였다. 강의가 유일한 생계수단이 되면서, 전임교원 채용 기준인 연구업적을 쌓을 시간과 기회가 더 줄어들고 대학원생에서 강사, 전임교수가 되는 ‘사다리’가 붕괴되는 것이다.

이제 강사와 대학이 강사 일자리를 ‘상시 업무’로 인정하고, 고용안정과 처우개선 방안을 적극적으로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이 전임교원을 법정 기준대로 뽑아 비정규직 일자리 자체를 줄이고, 교수 업무를 교육과 연구, 산학협력 등으로 세분화해 임용방식을 다양화하면서 ‘수업’ 말고도 생계가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라는 주문이다. 2018년 기준 전국 183개 대학의 전임교원 1인당 학생수는 30.5명(인문사회기준)으로 법정기준 25명보다 5.5명이나 많다.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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