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향한 미국의 제재가 최고수위로 치닫고 있다. 개인과 기업을 넘어 불가침 영역인 ‘재외 공관’으로 화살을 겨눴다. 홍콩과 대만, 남중국해, 신장위구르자치구 인권 침해 등 민감한 이슈를 놓고 미국이 중국 체제의 보루인 공산당을 직접 비판하며 날을 세운데 이어, 정상 외교관계마저 뒤흔드는 ‘끝장 승부’로 향하고 있다는 평가다.
미 행정부가 21일(현지시간)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을 72시간 안에 폐쇄하라”고 일방 요구한 것은 외교관의 면책특권 등을 규정한 ‘비엔나 협약’을 비롯해 정상적인 외교ㆍ영사관계를 깨자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미중 관계를 ‘국제법’이 아닌 ‘힘의 논리’로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중국을 향해 ‘한 방’ 세게 먹인 것일 수도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이 부쩍 흔들리는 미국이 궁지에 몰렸다는 방증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중국 외교부가 “일방적인 정치적 도발이자 국제법을 심각하게 위반한 난폭하고 부당한 정치적 도발”이라고 반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처럼 브레이크 없이 양국간 위기가 고조될 경우 전쟁을 제외하고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외교관계 단절(단교)’뿐이다. 앞서 중국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중국 공산당원과 그 가족 2억7,000만명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일간 뉴욕타임스 보도가 나오자 “단교보다 더 엄중한 상황”이라고 위기의식을 불어넣으며 내부 단결을 촉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 와중에도 건드리지 않는 재외 공관을 일방적으로 폐쇄하며 자극하는 건, 중국의 강도 높은 반발을 유도하면서 이를 빌미로 미국이 반격하겠다는 노림수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날 영국을 찾은 폼페이오 장관이 “공산당에 맞서는 반중 연합전선을 구축하는데 모든 국가가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에 맞춰 미국이 앞장서 행동에 나선 셈이다.
이미 미국은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중국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수년 째 유지하면서 영국 등 유럽 동맹국과 대중 봉쇄망을 공고히 다지고 있다. 또 홍콩과 신장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과 자치권 침해를 이유로 중국 전ㆍ현직 관료를 비롯한 관련 개인과 기관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이제 그 칼날이 각국 정부의 해외 전초기지인 재외 공관을 겨눈 것이다.
미국이 왜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을 첫 타깃으로 삼았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다만 미 국무부가 “지식재산권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조치”라고 짤막하게 밝힌 점에 비춰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놓고 양국이 치열하게 다투는 상황에서 중국 해커의 소행을 문제 삼으려는 의도일 수 있다. 지식재산권 문제는 올해 1월 미중 무역협상 1단계 합의에서 빠진 부분인 만큼 향후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여러모로 활용 가능한 카드이기도 하다. 휴스턴은 중국이 1979년 수교 이후 미국에 개설한 첫 번째 영사관이라는 상징성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