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위축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기업과 서민층의 세금은 줄이고, 부자들의 세 부담은 높이는 `투트랙 세제 전략`을 쓰기로 했다. 보편적 증세에 저항감이 높은데다, 코로나 사태로 저소득층과 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자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자산가에게 세금을 더 걷는 이른바 `부자 증세` 카드를 먼저 꺼내 든 것이다.
하지만 증세의 그물이 소득, 부동산뿐 아니라 주식과 펀드, 암호화폐, 전자담배 등 전방위에 퍼져 있어 이를 사실상 보편적 증세로 받아들이는 기류도 확산되고 있다. 그간 제대로 세금을 걷지 못했던 분야에 새 세목을 다수 신설한 만큼, 향후 과세 대상과 세율을 조정하면 정부가 얼마든지 보편적 증세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높다.
22일 공개된 '2020년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부터 소득세 과세표준 1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최고세율도 기존 42%에서 45%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양도소득세를 제외하고 근로 종합소득세를 기준으로 연간 10억원 이상을 버는 약 1만1,000명(상위 0.05%)의 고소득자는 향후 5년간 연 평균 1,800억원의 추가 세 부담을 지게 됐다.
고가주택 보유에 대한 과세도 강화된다. 공시가격 9억원 이상(2주택 이상자는 6억원 이상) 주택 소유자에 부과되는 종합부동산세율은 내년 6월부터 0.1~0.3%포인트 인상된다. 3주택 이상이거나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 세율은 0.6~2.8%포인트로 더 가파르게 오른다. 정부는 이를 통해 향후 5년간 4조1,987억원의 종부세가 더 걷힐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금융투자 소득 과세도 처음 도입된다. 2023년부터는 국내 상장주식, 공모 주식형 펀드를 합산해 5,000만원 이상 수익을 올리면 그 금액에 대해서 20~25%의 양도세를 내야 한다. 주식 투자자 약 600만명 가운데 상위 2.5%인 약 15만명의 슈퍼 개미에 대해 '핀셋 증세'를 한 것이다. 임재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상위 2.5% 투자자는 단순 소액투자자와 구분해 과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런 부자 증세 기조가 과세 형평성을 높이는 조치일뿐, 보편적 증세와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는만큼, 서민과 중소기업 세금은 대폭 깎아 전체 세수는 큰 변화가 없도록 설계됐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 추산에 따르면, 이번 세법 개정으로 서민과 중소기업의 세 부담은 2025년까지 1조7,688억원 줄고 고소득자와 대기업 세부담은 1조8,76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법 개정으로 향후 5년간 늘어나는 세수는 676억원에 불과해 증세라고 하기는 부적절 하다"며 "불필요한 증세 논쟁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도 증세 논란은 사그라 들지 않고 있다. 정부가 신설한 세목이 서민들에게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거래를 통한 연간 250만원 이상 이익에 20%의 소득세를 물리고, 액상형 전자담배의 개별소비세율을 2배 가량 올린 것은 반드시 부자를 겨냥한 증세라 하기 어렵다. 슈퍼 개미를 겨냥한 주식 양도세 부과도, 향후 공제 한도나 세율 조정을 통해 일반 개미에게 충분히 적용될 여지가 있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당장 정부가 보편적 증세에 나섰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금융투자 소득세를 신설한 만큼 향후 과세 대상을 확대할 수 있고, 부동산 양도세도 시장 상황에 따라 세수 증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