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아이들은 이전부터 이미 피해자였습니다."
2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옥영 경기대 교육대학원 교수(보건교육 전공)는 2014년 상담했던 한 초등학생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머리가 아프다고 보건실을 찾아온 여학생의 낌새가 이상해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유도했더니, 그 학생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신체 사진 유포를 협박받은 사실을 조심스레 꺼냈다. 우 교수는 학생을 설득해 교사들과 함께 사건을 수사 의뢰했고, 그제서야 학생은 SNS의 성범죄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우 교수는 이 때의 경험 이후 보건 교과서에 '디지털 성폭력 예방 교육'을 포함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가까이에서 학생들의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지켜봐 온 보건교육포럼(사단법인) 교사들도 모두 우 교수와 같은 마음으로 교과서 개정 작업에 동참했다. 이들은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을 반영해, 초등학교 보건 교과서에 없었던 새로운 성교육 내용을 제시하기로 힘을 모았다.
현재 초등학교 보건 교과서는 필수 교육 과목으로 지정돼 있지 않아, 개정사항이 반영되지 못한 채 2009년 교육 과정에 멈춰 있다. 성교육 내용도 직접적 신체 접촉이나 폭력에만 한정돼 있어, 디지털 성폭력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현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한다. 우 교수는 "실제로 만나 본 많은 학생들이 단체 메신저를 통해 타인의 신체 사진을 공유하고 품평하는 행위를 성범죄로 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보건 교과서 개정본에서 우 교수와 교사들은 디지털 성폭력의 사례를 직접 메신저 대화 형태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대표적인 미성년자 성착취 방식인 ‘온라인 그루밍'에 대해서도 다룬다. '친밀한 대화로 친분을 쌓은 뒤 신체 사진 등을 요구해 협박의 도구로 이용'한다고 언급하는 식이다. 또한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인 괴롭힘과 불법촬영물 유포ㆍ협박ㆍ공유도 성폭력'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서술하고 있다.
우 교수와 보건교육포럼 교사들의 교과서 개정본은 디지털 성폭력과 관련한 성교육의 새 가이드를 교과서를 통해 최초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교과서와 지도서가 승인 절차를 밟고 나면,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수업을 만들기 위한 워크북 제작도 할 예정이다. 이들은 5월 경기도교육청에 이 교과서 개정본을 승인해 달라며 신청을 넣었는데, 승인 여부는 이르면 다음달 나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