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는 '젊은건축가상'을 탄 전보림(45)ㆍ이승환(46) 부부 건축가(아이디알건축사사무소)는 국내 건축계에 보기 드문 ‘투사(鬪士)’다. '잠재적 건축주들'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다 공공건축의 부조리한 관행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내놓는다. 이 긴장감 때문일까. 부부가 쓴 책 제목도 ‘부부 건축가 생존기, 그래도 건축’(눌와)이다.
20일 경기 안양 사무실에서 만난 부부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국민 세금을 들여 진행하는 공공건축을 직접 맡아 해보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많았고, 그 얘기를 건축가가 해야 한다 생각"했을 뿐이다.
'공공건축 비판자'를 의도했던 바는 아니다. 부부는 서울대 건축학과 출신으로 2014년 건축사사무소를 연 뒤 마땅히 일거리를 찾지 못하자 공공건축 설계 공모전에 도전했다. 2017년 울산 매곡도서관을 시작으로 서울 언북중학교와 압구정초등학교의 다목적강당 등을 설계했다.
이 과정에서 공공건축 시스템의 불합리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첫 작품인 매곡도서관만 해도 도서관이 들어설 부지가 산비탈 외진 곳이었다. 공공건축, 그것도 도서관이면 접근성이 좋아야 할 텐데, 현행 제도엔 부지 접근성에 대한 기준 자체가 없다. 가끔식 왜 저기다 지었을까 싶은, 덩그러니 외따로 떨어진 공공건축은 그 결과물이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계약서도 너무 부실했다. 겨우 계약 주체, 용역명, 기간, 금액만 적도록 해뒀다. 건축 단계별로 세세하게 챙기고 따져봐야 할 내용들은 그저 '암묵적 관행'으로 처리된 셈이다. 설계기간도 부족하다. 2,100㎡(700평) 규모의 매곡도서관 설계에 주어진 기간은 고작 4개월.
비용도 터무니 없다. 2018년 기준 공공건축의 공사비는 3.3㎡(1평)당 700만~900만원대로 책정되어 있다. 민간 공사비에 비해 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최저가 입찰 과정에서 가격이 크게 깎인다. 전 건축가는 “매곡도서관은 그래도 평당 공사비를 600만원 이상 썼는데도 나중에 내부 마감을 하려니 좋은 자재를 쓸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학교의 다목적 강당을 지을 때도 벽에 부딪혔다. 건축의 기본이랄 수 있는 재료를 건축가가 지정할 수 없었다. 그 권한은 교육청 시설 주무관에게 있었다. 주무관을 설득해 어렵사리 재료를 정해도 시공 과정에서 다른 회사 제품으로 바뀌거나, 교직원과 학부모의 항의로 색깔 등이 바뀌기 일쑤다. 부부 건축가는 “그간 '교도소보다 학교 건물이 더 후진적인 건 시공비가 적어서'라고들 했는데 직접 해보니 그보다는 설계와 시공과정에서 전문가를 배제하는 폐쇄적인 시스템 때문"이라 입을 모았다.
건축공모전 자체의 문제도 있다. 이 건축가는 “건축 공모 심사에 인테리어 전문가, 건축 설계를 해본 적 없는 교수, 공무원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며 "공정성을 위해 다양한 이들을 참여시키는 것이지만, 설계를 잘 모르는 이들이 제대로 평가를 할 수 있을 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부부는 공정에 대한 지나친 강박에서 벗어나보자고 제안했다. 이 건축가는 “기획 공모 설계 시공 등 모든 과정이 '목적 없는 공정'에 짓눌려 있다”고 말했다. 교육시설을 잘 아는 건축가에게 자문을 받으면, 이 사람은 설계에 참여할 수 없다. 시공사를 선정할 때도 설계를 가장 잘 이해한 회사보다 가장 낮은 입찰가를 써낸 회사가 뽑힌다. 전 건축가는 “한국전쟁 이후 공공건축은 그저 싸게, 빨리 짓는데 초점을 맞춰왔다"며 "그때 만든 제도를 지금까지 유지하니 공공건축의 '질'에 대한 얘기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물론 쉽지는 않다. 부정부패 우려, 공정성 시비 등도 걱정된다. 사적으론 소신 발언을 일삼다보니 발주처인 공공기관으로부터 항의도 받고 급기야 계약을 거절당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 건 한국 공공건축을 통해 설계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어서다. “공공건축이니까요. 학교, 도서관, 복지관, 동사무소처럼 다양한 사람들 누구나 이용하는 공공건축을 제대로 지어야 사람들이 '좋은 설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