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개미' 판정승...주식 양도세 물리려던 정부 "5000만원까진 비과세"

입력
2020.07.22 14:00


정부가 '수익을 낸 주식투자자에게 세금을 걷는다'는 취지로 만든 주식투자 양도소득세 도입 방안을 대폭 수정했다.

정부는 22일 발표한 '2020년도 세법개정안'에서 주식과 펀드 투자 이익에 대해 세금을 매기더라도 5,000만원 수익까지는 면세해 주겠다고 밝혔다. 당초 2,000만원까지만 면세해 주기로 했던 것을 2.5배 늘리고 주식에만 적용하려 했던 공제를 펀드 수익금에도 적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2023년까지 0.1%포인트를 낮추기로 한 증권거래세도 당장 내년부터 0.02%포인트 낮추는 것으로 시점을 앞당겼다. '동학개미'들의 거센 문제제기에 결국 정부가 한 발 뒤로 물러선 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증권거래세 너무 높다"… 과세체계 개편 급물살

주식투자 수익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신설하는 대신 증권거래세를 인하ㆍ폐지하는 세제 개편은 2018년부터 급물살을 탔다. 당시 금융투자업계를 이끌던 권용원 전 금융투자협회장이 "누더기 형태로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세제를 개편하자"며 화두를 던졌고, 정치권에서도 이에 호응해 증권거래세 폐지 법안을 올렸다.

미국이나 일본, 독일 등 이른바 '금융 선진국'들은 증권거래세를 내지 않아 우리나라보다 거래 비용이 낮고, 주식시장이 활발한 주변 국가인 중국(0.1%), 홍콩(0.1%), 대만(0.15%) 등도 우리나라보다 낮은 세율로 증권거래세를 매긴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했다.

정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지난해 6월 증권거래세를 0.3%에서 0.25%포인트로 0.05%포인트 인하했다. 23년만의 일이었다. 여기에 더해 조세재정연구원과 자본시장연구원에 금융투자 관련 과세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해 전면적인 과세체계 개편에 나섰다. 그 결과물이 지난 6월 발표한 ‘금융세제 선진화 추진방향’이다.

정부는 특정 주식 지분을 10억원어치 이상 보유한 '대주주'가 지분을 팔 때만 매기던 세금을 연간 주식투자 이익이 2,000만원 이상인 투자자 전부에게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대신 손해를 봐도 이후 3년까지는 이를 세금 계산에 반영하는 '손실이월' 제도를 도입하고 증권거래세를 0.15%포인트까지 낮추겠다고 했다.

양도소득세를 매기는 만큼 증권거래세를 낮추기 때문에 전체 투자자 대상으로는 이익도 손해도 아닌 '세수중립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11년간 금융투자회사가 보유한 개인 증권계좌의 수익을 분석해보니 연간 주식투자로 2,000만원 이상을 벌어 세금을 내야 할 투자자는 전체 투자자의 5%(약 30만명)이라는 조세재정연구원의 연구 결과도 나왔다.


"하필 돈 버는 지금 양도세를"… 개미는 실망했다

다만 국내 증시가 지리한 '박스권'에 머물던 기간의 개인투자자 수익 자료만으로 투자자들에게 "양도소득세를 내는 사람은 극히 일부"라고 설득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10년 이상 쌓여 온 자료이기 때문에 충분히 오랜 기간 축적됐고, 그만큼 신빙성이 있는 자료라고 할 만은 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공포로 1,457.64포인트(3월 19일 종가)까지 떨어졌던 코스피 지수는 20일 종가 기준 2,198.20까지 올랐다. 시장 흐름에 올라탄 동학개미 중에서도 이미 2,000만원 이상을 번 투자자는 심심찮게 나왔다. 주식에 대한 양도소득세가 적용되는 2023년에도 개인투자자들도 충분히 그 이상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상황이었다.

이달 초 열린 공청회에서도 한 개인투자자가 "동학개미들이 주식시장을 안정시키고 있는 이 시점에서 왜 '큰손'들이 주식시장을 떠나게 하느냐"며 "이번 개편안으로 외국인과 기관은 가만히 앉아서 이익을 보고, 개인만 손해를 보는 '제로섬'이 된다"고 지적했다.


연간 5000만원까진 비과세… 정부 손들었다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진행되는 등 여론이 악화되자 정부도 결국 손을 들었다. 이미 공청회에서부터 정부는 개인투자자들과 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당초 발표한 추진방향을 손볼 수 있다고 시사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번 금융세제 개편안은 주식시장을 위축시키거나 개인투자자의 의욕을 꺾는 방식은 아니어야 한다"며 "어려운 시기에 주식시장을 떠받쳐 온 동력인 개인 투자자들을 응원하고, 주식시장을 활성화 하는 데 목적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정부는 이날 발표한 세제개편안에서 주식투자 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 공제 대상을 펀드까지 확대하는 대신 공제 수준을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대폭 상향한다고 밝혔다. 다른 나라에 비해 짧다는 지적이 나왔던 손실이월공제 기간도 3년에서 5년으로 늘렸다. 증권거래세도 2022년 0.02%포인트, 2023년에 0.08%포인트 낮추기로 했던 것을, 2021년에 0.02%포인트, 2023년 0.08%포인트 낮추는 것으로 수정했다.

앞서 금융투자세제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해왔던 한 연구원은 “주식과 펀드를 합산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예상보다 큰 폭으로 공제 수준이 늘어났다”면서 “현재의 시장 상황과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을 고려해 정부가 대승적인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해석했다.


거래세 축소ㆍ양도세 확대… "언젠간 가야 할 길"

물론 개인투자자들의 열망이 100%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투자자들은 양도소득세를 물린다면 대신 증권거래세를 폐지할 것을 원했다. 정치권에서도 증권거래세 폐지 계획을 명확히 밝히라고 정부에 주문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번 세법개정안에는 증권거래세 폐지 ‘로드맵’은 포함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여전히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고, 이들에게서도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는 것은 과세형평에 어긋난다는 점 때문이다.

다만 정부가 양도소득세와 증권거래세 수준을 고려해 더 낮출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 든다면 증권거래세의 추가 인하 가능성은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1988년 0.55%였던 증권거래세율을 1989년 0.3%로 낮춘 뒤 1999년까지 1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폐지를 했다.

다만 이는 양도소득세 납부 대상자를 확대하는 것과 병행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대로 주식, 펀드 투자 수익에 대해 5,000만원까지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세금을 내는 투자자는 전체 주식 투자자의 2.5%에 불과하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의 원리와는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 기준을 다시 낮출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상품이 생길 때마다 중구난방식으로 만들었던 과세 체계를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이 방점"이라며 "새로 만드는 과세체계를 기준으로 장기간에 걸쳐 과세 대상이나 세율을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세종 = 박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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