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리아에서의 슬기로운 집콕생활

입력
2020.07.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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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심이 충만한 여행객들은 일부러 오지를 찾아가 탐험을 하는 기쁨을 누리겠지만, 만약 직업 때문에 그런 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그 생활이 늘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특히 사무실이나 학교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닌, 가정주부의 입장에서는 낯선 환경, 치안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주 무대가 집인 ‘집콕생활’을 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3년 동안(2014. 2.~2017. 2.) 체험했다.

브라질리아는 브라질이 해안 중심으로만 발달되어 왔다는 문제의식에서 1960년도에 내륙에 만들어진 행정수도이다. 한국에서 서울의 비대화를 막고자 세종시를 설립하는 과정에서도 브라질리아가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종시는 서울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반면, 브라질리아는 남쪽 해안가 대도시들인 상파울루나 리우까지 자동차로 편도 10시간 이상이 걸리니, 큰맘 먹고 비행기 여행을 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나날을 브라질리아에서 지내게 된다.

그렇다고 브라질리아의 삶이 그다지 알록달록 맛깔스럽지도 않다. 인공적으로 만든 작은 행정수도인 만큼 번잡하고 북적거리는 골목들이 없다. 사실, 브라질 거주기간에 파란만장한 일들이 있어 왔지만(지우마 대통령 탄핵, 지카 바이러스 창궐, 2014년 월드컵, 2016년 올림픽 등), 브라질리아에서는 속세와 단절된 듯 목가적인 나날이 이어졌다. 이곳을 경험한 한국인들은(상파울루 교민 수 약 5만명, 브라질리아 100여명) 이런 정적인 분위기를 백담사에 비유하여 브라질리아를 ‘브담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어 국가인데, 한국과 같은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가 아니라서 영어교육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영어가 일상에 보편화되지 않은 만큼, 흔한 영어 단어들도 여기서는 이국적인 멋을 풍기는 고유명사로 자주 사용된다. 브라질리아 호숫가에 위치한 리조트 이름들이 '인생(Life)'과 '태양(Sun)'이라는 자못 빤한 단어들이고, 쇼핑센터 근처 전철역 이름은 아예 '쇼핑(Shopping)'이다. 이런 곳에서 포르투갈어 문법책을 구해 학구열을 불태워, 식당에서 “웅 수꾸지 라랑자, 셍 젤루, 셍 아수까, 뽀르 파보르(오렌지 주스 한잔을 얼음과 설탕 없이 주세요)”라고 주문하는 뿌듯한 수준에 도달했다.

언어가 잘 안 통하는 나라에 살면 세계 공용어가 바로 보디랭귀지이다. 하지만 이것이 종종 큰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브라질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손 모양은 '엄지척(따봉)'인데, 이것이 중동에서는 심한 욕이라고 한다. 브라질에서 욕은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모으는 모양이다. 마치 미국에서의 가운뎃손가락, 영국에서의 손등을 보이는 브이(V)처럼 말이다. 놀랍게도, 한국에서 심한 욕에 해당되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끼우는 것이 브라질에서는 행운을 빈다는 뜻이다.

슬기로운 집콕생활은 과거에 당연시했던 것들에 대한 향수와 그것들의 소중함을 느끼는 삶이다. 슬기로운 집콕생활은 외부의 방해가 없이 조용히 자신을 성찰하고 작은 것에 행복을 찾는 삶이다. 슬기로운 집콕생활은 다시 돌아갈 익숙함과 다가올 미래에 가슴 설레고 벅찬 삶이다. 그리고 브라질리아에서의 예행연습들이 또다시 닥친 코로나라는 위기를 슬기롭게 견뎌내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김윤정 ‘국경을 초월하는 수다’ 저자ㆍ독일 베를린자유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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